14일 평양에서 남북 두 정상간에 서명된 공동선언은 분단 반세기를 통한 남북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여는 상징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김 대통령의 통일을 향한 비전과 햇볕정책,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소위 ‘통 큰 정치’가 잘 접합되어 이룬 성과라고 하겠다. 우리는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개선하면서 개혁,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또 이미 미국과 합의한대로 핵 프로그램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중지함으로써 미일 관계를 정상화하고 국제사회에 복귀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 한민족의 간절한 소원은 금번 합의가 차질 없이 이행되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고 남북이 공존 공영하면서 평화롭게 통일의 길을 걷는 것이라 하겠다.남북공동선언의 내용을 보면 그 기본 개념에 있어서는 7·4 남북공동성명, 1992년의 남북 기본합의서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7·4 공동성명은 대리자에 의하여, 기본합의서는 남북 총리에 의하여 서명 되었다는 점에서 두 정상이 직접 서명한 금번의 남북 공동선언과는 큰 차이가 있다. 더욱이 양 정상은 공동선언 속에 합의 사항 실천을 위한 당국자간 대화를 곧 개시하도록 했고 이산가족 상봉에도 시한을 정했으며 또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도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지도록 합의하였으므로 이행의 전망은 아주 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몇 가지의 의문이 없지 않다. 첫째, 김정일 위원장은 과연 북한을 개방하고 개혁 정책을 과감히 추진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는 중국 방문시 중국의 개혁 개방정책을 찬양 하면서도 ‘우리식 사회주의’를 언급했다. 그것은 곧 종심이 깊은 중국에 비하여 개방 정책이 북한 체제에 미칠 위협을 감안한 계산된 발언이므로 북한 개혁정책의 한계를 예견케 한다.
둘째, 서양 속담에 “악마는 세부사항에 있다(Devil is in the details)”라는 격언이 있다. 5개항에 대한 포괄적 합의는 정상회담의 성격상 불가피했었을 것이나 그 구체적인 이행과정에서는 많은 난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 김 위원장은 서울 방문 초청은 수락하면서도 그 시기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 ‘적절한 시기’라는 표현은 경우에 따라서는 경협의 내용, 자주적 통일 등 민감한 문제 등과 관련하여 지렛대로 이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공동선언 이행의 문제는 정상간의 신뢰구축과 정치적 결의에 따라 극복될 수 밖에 없다.
한편 우리는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이 한국을 둘러싼 4강 특히 한미 관계에 미칠 영향을 신중히 고려하고 적절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여론은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에 크게 기여한다고 평가하면서도 주한 미군과 미국의 대량살상무기 통제정책에 미칠 영향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최근 있은 매향리 사건과 SOFA 개정문제에서 비롯된 반미감정의 확산은 남북화해 무드에 편승하여 주한 미군의 철수 요청으로 연결될 수 있고 또 그것은 미국이 북한과 중국을 의식하여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 방위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이 한미 동맹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는 작금의 여론의 행방을 지켜보면서 북한 지도층의 의도를 지나치게 의심하는 냉소주의도 경계하거니와 그렇다고 북한이 180도 달라진 양 감상주의에 흐르는 의견에도 동의할 수 없다. 우리는 냉정하고 균형된 감각으로서 정상회의의 결실을 소화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지켜봐야 하겠다.
/박수길 고려대 석좌교수·전 유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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