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이 14일 밤 서명한 ‘6·15 남북공동선언’은 분단이후 반목과 대립으로 점철된 남북관계의 기본 틀을 화해와 협력으로 바꾸는 계기다. 김 대통령은 분단 55년의 단절을 뚫고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린 2박 3일간의 평양방문에서 15일 돌아왔다. 두 정상의 합의는 남과 북에 떨어져 살아온 동족의 의미와 그 미래를 되새기게 한 민족사적 쾌거다.5개항으로 된 6·15 선언은 과거의 공동성명이나 합의서와는 격이 다르다. 반세기 분단사상 남북의 정상이 첫 직접 대좌를 통해 이뤄낸 결과물이라는 점이 그렇고, 그것도 두 정상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만난 것이기에 그 의미가 배가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민족 공존공영의 길이 열렸다고 반기는 이유는 두 정상이 앞으로도 만남을 지속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세기 넘게 일촉즉발의 대결을 지속해 온 남과 북이 이렇듯 화해와 평화의 길을 함께 열게 되리라 누군들 짐작이나 했겠는가. 세계는 지금 21세기의 새 시대에 한민족이 펼쳐 보이는 민족사적 결단에 놀라움과 찬사를 보내면서, 한편으로 사태추이를 살피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과연 이로써 지구상 마지막 냉전의 유산은 순조롭게 청산될 것인가. 한민족은 그 자주적 역량으로 마침내 분단을 극복하는 저력을 과시할 것인가.
공동선언에 서명한 남과 북의 정상이 두 팔을 높이 쳐들며 맞잡은 손은 극적인 상징이다. 흉금을 털어놓으니 거기 쉬운 합일점이 있었던 것이다. 전쟁과 살육과 대결의 반세기는 어리석고 부끄러운 역사일 뿐이다. 이제 5개항을 실천해 나가는 가운데는 완급을 둘러싸고 얼굴붉히는 일도 있을 수 있다. 또 이견과 오해의 여지가 곳곳에 남아있다. 그러나 두 정상의 열린 마음과 솔직했던 합의정신을 되새기면 의외로 쉽게 해결의 가닥을 잡을 수 있으리라 본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남북이 합의한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원칙과, 서로의 통일방안에서 접점을 찾아 합의한 통일논의의 기본 틀이다. 방법론에 대해서도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는 선에서 공통분모를 찾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상대안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배제했던 지난날의 접근방식과는 천양지차의 결정이다. ‘적화통일’과 ‘흡수통일’에 대한 뿌리깊은 상호불신에서 비로소 벗어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산가족 상봉과 장기수 송환문제는 시급한 필요를 충족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과시할 수 있는 합의다.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서신왕래 등 단계적 진전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전쟁의 공포에 시달려온 7,000만 민족에게 이번 6·15 선언은 위안이고 희망이다. 신뢰를 굳히기 위한 성숙한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부과된 민족사적 소명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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