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55년 만에 이뤄진 남북 정상의 만남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반세기 가까운 반목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두 정상의 움직임 하나 하나는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숱한 뒷이야기를 뿌렸다.■2차정상회담 및 남북공동선언 작성과정
○…공동성명의 문안을 확정하는 막바지 단계에서도 서명자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등 적지않은 진통이 있었다는 후문. 북측은 “국방위원장 직책이 국가원수가 아닌데 대통령과 함께 서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김영남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하거나 두 정상의 명을 받아 다른 사람이 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남측이 “남북의 지도자는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이라는 입장을 밝혀 두 정상이 서명하는 것으로 결론.
○…공동선언중 민감한 사안의 하나인 제2항의 ‘연합제’‘연방제’조항에서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라고 표현한 것은 김대통령이 김위원장을 상당시간 설득한 결과라고 박준영 대변인이 전했다.
북측의 공식적인 연방제안은 중앙정부에서 외교와 군사에 관한 권한을 갖는 것으로 김위원장은 회담에서 이를 계속 주장했다는 것. 그러나 김대통령이 “그렇게 되면 국제기구에서의 관계등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며 장시간 설명해 공동선언에 나온대로의 표현에 합의가 이뤄졌다.
김대통령은 회담 후 “내가 젖먹던 힘까지 내서 진실되게 설명했다”고 회담분위기를 설명했다고 박대변인이 전했다.
○…2차 정상회담에서 김위원장은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펴다가도 남측의 설명이 합리적이고 민족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즉시 이를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박대변인이 전했다.
특히 김위원장은 회담도중 김대통령의 발언 중간중간에 “섭섭한게 있다”면서 “우리는 일관되게 하는데 남측에서 모순되게 한다”는 등 그동안 남측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했던 사항들을 기탄없이 솔직하게 말했다는 것.
또 남측신문을 김대통령과 함께 보면서 자신을 좋지 않게 다룬 기사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고 박대변인이 전했다. 반면 김대통령의 인생역정과 정치역정에 대해서는 “목숨까지 위태롭게 되는 탄압을 받고 집권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수차례 존경심을 표시했다고 박대변인이 전언.
김대통령도 나름대로 북한에 대해 서운한 점을 김위원장에게 밝혔다. 박대변인은 김대통령이 “서로 간에 전쟁의 공포를 느끼고 있는데 여기에서 벗어나자고 말했다”고 전해 서해교전 등 북한의 도발 등에 어떤 식으로든 문제제기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김정일위원장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김위원장의 육성을 TV를 통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작은 소득. 더구나 김위원장은 속사포식 화법을 구사하는 다변이었던 반면, 김대통령은 시종 말을 아껴 대조를 이뤘다.
김위원장은 특히 2차 단독회담에 앞서 “구라파에서는 내가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던데 김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며 농담을 던지는 등 특유의 ‘수사법’을 선보였다. 반면 평소 뛰어난 언변가라는 평가를 받았던 김대통령은 이번 방북기간중 되도록 간결어법만 사용했다.
기타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은 회담기간 중에 모두 세차례 함께 식사를 했는데 끼니때마다 남한에서는 맛볼 수 없는 북한 음식들이 선보여 남측대표단의 입맛을 돋구웠다는 후문.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첫날 만찬에는 김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기위해 직접 이름을 지은 메추리완자탕인 ‘륙륙날개탕’을 비롯, 칠면조 향구이, 생선수정묵 등 15가지가 테이블에 올랐다. 우리측이 주최한 14일 만찬에서는 문배술과 소주가 반주로 등장, 양측 대표단이 화제로 삼기도 했다.
○…북한측이 이번에 동원한 의전용 차량들은 모두 링컨 콘티넨털, 캐딜락, 벤츠 등 수입차량들이다. 김대통령과 김국방위원장이 첫날 순안 공항에서 동승한 리무진은 미국 포드사의 링컨 콘티넨털 리무진(2억원 안팎)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남측 수행원들에게 제공된 벤츠 30여때까지 합치면 이번 정상회담의 행사차량 가격만 수십억원대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고급중학교 시절인 16세에 운전을 배워 한때 스피드광으로 불렸던 김위원장은 직접 차종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3일간의 김정일, 그 진면목 -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3일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당하게 TV카메라 앞에 서서 자신을 완전 노출시키며 세계의 이목을 한곳에 모았다.
이제 세계인들은 김위원장을 더이상 ‘은둔의 지도자’‘베일속 지도자’로 부를 수 없게 됐다. 정치적 효과를 노린 의도적 연출이든, 아니면 김위원장의 지도자적 역량과 인간적 품성이 드러난 것이든, 김위원장은 자신의 말대로 ‘은둔에서 해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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