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연재됐던 ‘똑똑한 자의 멍청한 짓’이 한국일보의 지면개편에 따라 29회로 끝을 맺습니다.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편집자주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하자는 논의가 한창이다. OECD회원국 중에서 가장 긴 근로시간을 가지고 있으니 노동시간을 주40시간(주5일 근무제)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은 시대의 대세인 것 같다. 선진국들이 짧은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점은 노동생산성에 있다.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 결코 투입시간을 늘려서 될 일이 아니다. 노동시간을 늘릴수록 오히려 생산성은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노동시간을 줄이면서도 같은 수준의 성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일하는 방법을 혁신하려는 유인이 발생한다. 그래서 생산성이 높아진다. 선진국에서 짧은 노동시간에도 많은 성과물을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있어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필요한데, 투입이나 중간프로세스보다 최종성과물을 중시하는 메커니즘인 성과관리시스템(Performance Management System)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가급적 적은 노동시간으로 더 좋은 성과물을 창출하는 노하우와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과물을 정확히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노동시간을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고위관료들은 성과물을 명확히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투입량인 노동시간을 늘리면 좋은 성과물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투입시간을 조정함으로써 성과물의 질을 제어하려는 발상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다. 고도의 행정서비스는 지식노동이기 때문에 오히려 투입시간은 자율에 맡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성과관리시스템 없이 노동시간을 늘려서 성과물을 창출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멍청하고도 위험한 일인지는 다음의 몇 가지 예가 말해준다.
1993년 문민정부가 처음 출범했을 때,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 때 경제정책을 담당했던 고위공직자들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30분 일 더하기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일을 더하면 성과가 올라 경제는 좋아지리라고 단순히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최종결과물은 외환위기였다. 일하는 시간을 늘렸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게 아니라, 성과물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오랜 시간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항해하는 선박과 같은 것이다. 열심히 그리고 빠르게 항해를 했지만,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우왕좌왕하다 좌초하고 만 꼴이다.
그러므로 시급한 것은 최종성과물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그것을 측정할 수 있는 성과지표를 개발하여 제어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것을 뒷전에 둔 채, 관료들에게 열심히 일만 하도록 했으니, 결국은 국가파산의 위기까지 가게 된 것이다.
대우의 김우중 회장도 초기에는 부실기업을 인수해서 회생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경영혁신을 통한 생산성 제고가 아니라 노동시간, 즉 투입량을 늘려서 성과를 내는 방식으로 일해왔다. 외환위기 사태 직후, 밤 11시 넘어 지방출장에서 돌아온 그는 많은 직원들이 퇴근한 사실을 알고 “이렇게 일찍 퇴근하는 사원들이 있느냐”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 투입을 늘려서 성과를 내려는 사고방식이 대우신화를 무너뜨린 것이다.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성과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생산성 제고뿐만 아니라 공무원을 포함한 근로자 모두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도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최동석 조직개혁전문가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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