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각기 분단정부가 들어선지 52년만에 처음 만난 남북한 두 정상들의 모습은 오랜동안 헤어져 그리던 형제가 극적으로 상봉하는 것 같이 다정했고 화기애애했다. 그런 관계가 식지말고 오래 지속되어 남북한간의 화해와 교류협력 그리고 평화통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두 정상들의 정겨운 상봉을 지켜보면서 일부 한국인들이 눈물까지 글썽였던 것은 지난날 그토록 모질었던 남북관계 악순환에서 울컥 치민 감동분출이었다.6월의 정상회담은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 모두에게 승리를 안겨다준 회동이었고 두 지역 주민들에게도 위안과 희망을 가져다준 만남이었다. 국제사회에서는 기대와 호기심을 촉발하기도 하였다.
김대통령의 승리는 그의 햇볕정책 목표중 하나인 남북정상회담이 꿈이 아니요, 순안공항에서 현실로 나타났다는데서 설명된다. 더 나아가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은 김위원장으로부터 성대한 환영까지 끌어낼 수 있었다는 데서 더욱 그렇다.
한편 김위원장은 김대통령과의 회동을 통해 북한 통치자로서의 소탈하며 밝고 예의바른 면모를 남한은 물론 전세계에 한 푼의 광고비도 들이지 않은채 전파할 수 있었다. 세계 주요 외신망을 타고 김위원장은 언어장애가 아니고 건강이 나쁜것도 아니며 ‘불량국가’의 망나니도 아닌것 같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김대통령에 대한 그의 예의바른 환대, 그리고 개방적인 제스쳐는 지난날 어두운 선입견을 많이 씻어낼 수 있었다.
그런가하면 평양회담은 남한주민들에게 제2의 6·25남침이나 KAL 858기 공중폭파 또는 잠수함 침투 같은 것을 더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는 기대감을 주기도 했다. 남북한 주민들은 다같이 두 정상들이 다정하게 손잡고 얘기를 나누듯이 그들끼리도 머지않은 장래에 그같은 기회가 오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남북한 관계가 지난 반세기 동안 전쟁과 대결, 갈등과 증오, 불신과 배척 속에 굳어져 있었음을 상기할 때 일말의 불안감이 떨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밝은 기대감속에 묻어나는 어두운 그림자는 김위원장의 호탕한 환대속에 숨겨진 속셈에 대한 추측에서 우러나오고 있다. 김위원장의 의도적인 환대는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보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위원장은 자신에게 득을 주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보상을 한다는 ‘통큰 마음’을 부각시켜 더더욱 득을 따내려는 계산이 아닌가 싶다. 실상 60만명의 환영군중은 북한당국에 의해 잘 조직되고 연출된 세트에 불과하다. 언제든지 그들은 노동당의 지령으로 ‘남조선 타도’구호를 외칠 수 있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이 진실로 두 지역 화해와 교류협력및 평화통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관계진전이 순수해야 한다. 북한이 평양회담을 계기로 남한에 ‘민족단합’과 화해무드 분위기를 조성하여 주한미군철수, 친북통일책동 합법화 등의 관철을 요구하고 나선다면 어떠한 합의나 선언도 의미가 없다.
따라서 김위원장은 김대통령에게 “섭섭치 않게 해줄테니 염려마세요”라고 말한 대로 섭섭하지 않도록 화해와 교류협력의 진솔한 마당으로 나서야 한다. 지난날 남북한간에는 7·4공동성명과 남북합의서 등을 선언했고 체결하였지만, 북한의 이행 거부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대결과 불신관계로 고착돼 왔다. 2000년대 첫해의 평양회담만은 그같은 지난 1900년대의 전철을 되풀이 하지않고 남북이 서로 상대편의 실체를 존중하고 공존하며 공영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바란다. 김위원장 말대로 ‘6월 13일은 역사에 당당하게 기록될 날’로 되어야 하며 ‘왜곡된 날’이 결코 되어서는 아니된다. 7,000만 남북 동포의 한결같은 염원이기에 그렇다.
/정용석 단국대 사회과학부 교수 전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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