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 상관않는 유머지수 실험“운(韻) 좀 떼봐”
이렇게 말하는 청소년 중 ‘운’이란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무튼 상관없다.
운만 떼면 되니까. ‘버터오징어’로 해봐. ‘버-버끼지(벗기지) 마’ ‘터-터질 것 같애’ ‘오-오딜(어딜)만져’ ‘징-징그러’‘어-어마(엄마)야’
상대방 끌어들이는 상호성 지녀 소리나는 대로… 언어파괴 묘미
처음부터 이 수준은 아니었다. ‘지네’(지-지네야-, 네-네), ‘해파리’(해-해파리야, 파-파리같아, 리-리얼리?) 정도의 애교스런 비하가 이 시짓기 열풍의 시작이었다.
‘박미선’의 이름을 운으로 떼는 것으로 시작, 파리, 고등어 등 ‘순진한’명사로 이어지다 이제 ‘피카츄’ ‘텔레비전’ ‘벤처’ 등 고난이 단어로 수준이 격상됐다.
말이 삼행시지 2행, 4행, 5행 마구잡이로 줄였다 늘였다 이다.
삼행시는 예전 선비들이 상대방의 지적 수준을 탐색하기 위해 즐겨 썼던 일종의 대화법 중의 하나. 그러나 요즘의 삼행시는 상대방 유머 지수의 실험도구다.
‘발제-전개-반전’의 묘미는 사라진 지 오래다.
삼행시가 신세대 유머로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자 메시지가 일방적으로 유머를 보냄으로써 완결되는 단절적 커뮤니케이션인데 반해 삼행시는 운을 던지고, 마지막엔 상대방 조차 텍스트의 구조안으로 끌어들이는(‘지네’2행시) 상호성(인터랙티브)을 확보하고 있다.
‘남-남북이 합쳐졌습니다, 형님’ ‘북-북치고 장구쳐라 아그들아’하는 ‘남북‘ 2행시 처럼 돌발 사안에 순발력 있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물론 여기엔 신세대들이 선호하고, 국어학자들이 경악하는 언어파괴가 핵심이다. 운을 맞출 수 있다면 아무 단어나 소리나는 대로 끌어다 쓴다.
‘말미잘‘의 ‘잘’은 ‘자알논다’, ‘버터오징어’의 ‘어’는 ‘엄마야’다. 웃기면 되지 맞춤법 따위가 무슨 상관이냐는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그거 말 안돼잖아”라고 반박했다간 “네가 말이 안된다”고 핀잔 듣기 십상이다.
시한 행 한 행에 숨어 있는 문기(文氣)를 감상하자는 것이 아니고, ‘피카츄’ ‘앙드레김’ 같은 말로 시를 지었다는 사실, 그 사실에 만족할 뿐이다.
그러나 ‘사오정 유머’로 시작된 ‘썰렁 유머’가 이 시대 유머의 기준점이 된 이상 “안 웃긴데 뭐가 유머냐”하는 반응은 삼행시 열풍에 손상을 입히지 못한다.
모든 유머의 끝은 음담패설이라는 가설은 이 삼행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테크노 버전의 ‘올빼미’삼행시가 ‘올라타’로 시작하는 에로 버전으로, 그저 스타를 희롱하던 수준의 이름 삼행시도 ‘김희선’ 수준의 에로틱한 분위기로 변질됐다. 여기서 ‘수준’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웃기면 그만이다. 유쾌한 것이건 쓴웃음이건.
박은주기자
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