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탑설계 장인숙.경제학부출신 김옥란씨 인터뷰탈북여성 장인숙(59)씨와 김옥란(42)씨는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심정이 남다르다. 남쪽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51년간의 분단과 괴리감을 뼈저리게 느껴왔기 때문이다.
두사람은 “남북정상회담은 시작이다. 이제 남과 북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먹을 것이 있으니 사는 문제는 해결됐다고 하지만 탈북주민들은 자녀교육 가족불화 등 많은 문제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탈북여성들은 빈곤과 성차별 등 이중부담을 떠안으며 체제 차이로 인한 최종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탈북한지 2년반이 되는 두 사람은 그래도 체제적응의 성공적인 케이스. 두 사람 모두 북한에서 엘리트 여성이었기 때문에 적응력이 뛰어났기 때문인 듯 하다.
먼저 탈출한 큰 아들의 도움으로 97년9월 서울에 온 장씨는 북한에서 김일성주체사상탑 설계에 참여하고 30개가 넘는 교량을 설계한 토목기사 출신.
건축가동맹 토목분과회원으로 9차례 훈장을 받았다. 장씨 가족은 1994년 고르바쵸프 구소련 대통령의 서울방문 당시 러시아 유학을 떠난 큰 아들이 통역을 하는 모습을 TV에서 보고 탈북사실을 알았다. 함북 온성탄광으로 쫓겨난 그는 나머지 두 아들과 함께 탈북했으나 차남은 도중에 붙잡혔다.
1997년 12월 두 아이와 함께 탈북한 김씨는 강반석혁명학원 경제학부 출신. 김일성의 어머니 이름을 딴 강반석혁명학원은 출신성분이 좋고 성적이 우수해야 들어갈 수 있는 엘리트 코스. 중앙에서 생산한 물건을 전국으로 분배하는 상업관리소의 지도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남쪽으로 온 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김씨는 스스로 일해 살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정부의 지원금을 거절했다. 구청에서 하는 공공근로를 하기도 했던 그는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를 하면, ‘그런 말씨로 어떻게 일하겠느냐’‘북쪽 사람은 쓰지 않겠다’고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장씨도 사정은 비슷했다. 현대건설의 장전항건설사업 자문역으로 초청받아 회사에 갔지만 직원들이 모두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아예 포기해 버렸다.
장씨는 “탈북주민들은 남쪽에서 직업 갖기가 무척 어렵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다 모든 것이 서투르기 때문에 단순 노동직 이외에는 일거리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탈북자동지회’에서 만난 두 사람은 최근 각종 생필품등을 방문판매하는 일을 시작했다. 황장엽씨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이 모임이 국내외 어려운 탈북주민들을 돕기 위해 벌이는 운동의 기금마련을 위해서이다.
탈북자동지회 회보 ‘민족통일’을 만드는 일에도 이들은 열심이다. 협찬받은 물건을 들고 방문판매를 하다보면 잡상인으로 오해받는등 어려움도 많다.
그러나 “직접 일을 하면서 카드쓰는 법, 결제하는 법 등을 배우고 남한 사회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의 모습은 언젠가 이뤄질 남북간 사회통합을 위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김동선기자 dongsun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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