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은 남북의 주민들이 서로 상대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가령 TV를 통해 처음 드러난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모습은 적어도 이제까지 남측 주민들이 가져 온 선입견과는 다르다고 느낀 경우가 많았다. 표피적이기는 하지만, 이같은 인식의 혼란은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면역이 없다면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상황이다. 우리의 생각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남쪽을 바라보는 눈도 비슷한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사에서 이런 변화는 우리에게 자기성찰을 촉구하는 기회가 된다.북한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든 김정일위원장 개인에 대한 인식이든, 우리의 생각이 편향되고 부정적이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김위원장은 비정하고 괴팍한 성격의 독재자, 내성적이고 편집광적인 은둔 망상가, 부도덕하고 무능한 탕아라는 식으로 이미지가 형성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선입견으로 고착되었던 그가 한 순간 윗사람을 깍듯이 모시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예의 바른 인간상으로 바뀌는 데는 극복할 수 없는 혼란이 따른다. 예상을 깨고 공항까지 김대중대통령을 마중한 일과, 걸음걸이가 불편한 손님과 보조를 맞추고, 손님이 먼저 차에 오르는 동안 옆문을 열고 서서 기다려주는 그의 태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는 첫 정상회담에서 “자랑을 앞세우지 않고 섭섭하지 않게 해드리겠다”고 말했다.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고 싶어 환영인파가 많았다는 말도 했다. 예의를 숭상하는 나라임을 강조하는 그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당혹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우리의 경직된 대북인식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참혹한 전쟁에서 혈육을 빼앗기고 잃은 아픔은 무엇으로도 보상되지 않는다. 전쟁과 테러의 위협이 현존하는 공포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러 부분에서 북한과 북의 지도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일방적인 오해나 정보로 왜곡된 것이 없지 않다. 그런 왜곡은 우리 내부의 정치적 목적에서, 또는 냉전적 사고방식에 젖은 서방언론들의 헐뜯기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폐쇄성이 자초한 국제사회에서의 ‘왕따’ 현상과 핵 개발의혹에 맞물린 불량국가 낙인이 우리의 북한 공포증과 혐오감을 증폭시켜, 우리 스스로 같은 민족임을 부끄러워할 정도에 이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냉철한 사실에 근거한 북한관을 정립할 때다. 가서 만나서 얘기하고 관찰한 경험과 사실을 바탕으로 북한과 그곳 동족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그래야 진정한 이해와 화해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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