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의 역사토머스 라커 지음·이현정 옮김, 황금가지 발행
여자가 강간을 당해 임신을 했다고 가정하자. 중세에는 이런 여자들은 강간의 희생자로 처리되지 않았다.
임신은 오르가슴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의학적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남성은 처벌되지 않았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시몬느 드 보바르의 말은 사회학적으로 명명되어지는 여성의 성(젠더·Gender적 의미의 성)을 말한 것이다.
정치적 사회적 동기에 의해 여성의 정체성이 형성된다는 의미로 이미 상식이 되어버린 말이다.
남성지배 논리에 싸인
섹스의 인식변화 다뤄
과학도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토머스 라커(버클리대 역사학과 교수)가 쓴 ‘섹스의 역사’는 방대한 사료를 동원,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인 성(섹스·Sex적 의미의 성)이 어떻게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왜곡돼 왔는가를 밝히는 책이다.
흔히 ‘남성적’ 학문이라고 일컬어지는 인류학을 넘어 비뇨기학이나 산부인과학조차 남성 지배의 논리를 공고히 하기 위한 암묵적이고 무의식적인 왜곡을 일삼아 왔다는 주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섹스는 생식을 위해 존재하며, 생식은 존재의 첫번째 범주에서 생성하고 변화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남성은 동력인(動力因)을 표상하고, 여성은 질료인(質料因)을 표상한다고 했다. 남성은 능동적인 존재, 여성은 그 능동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물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고대 로마의 의사이자 위생학자인 갈레누스라는 “여성의 은밀한 부분은 남성의 것과 정반대가 된다. 말하자면 여성의 음부 아래 부분은 움푹 들어가 있고 남성의 것은 튀어 나와 있다“고 분석했다.
여성의 성기에 개별적인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은 18세기 후반에야 가능했다. 남녀 모두에게 공통적인 기관이라고 인식됐던 ‘고환’이라는 이름 대신 여성에게는 ‘난소’라는 독립적 단어가 쓰였다.
1770년 실험가 라자로 스팔란차니가 개에게 인공수정을 성공시킴으로써 오르가슴이 임신의 전제조건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 전까지 해부학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편견에 포박당해 있었다. ‘임신한 여자의 몸을 해부할 기회가 적었으므로 임신의 메커니즘을 밝힐 수 없었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이미지나 구체적인 언어로 규명하는 자체가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성의 변형적 모델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때까지의 신념이었다.
그러나 과학적 진보로 인해 더 이상 구 모델의 유지가 어려워지게 되면서 여성의 성에 대한 새로운 필요성이 대두됐다는 설명. 이를테면 여성의 오르가슴이 ‘여성이 처녀일 땐 음핵 오르가슴을 느끼고 처녀성이 상실돤 후론 질 오르가슴을 느끼지 시작한다”는 프로이트의 가설 역시 과학적 진보라기보다는 여성의 성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 혁명적으로 달라졌음을 나타내는 한가지 상징이다.
성기와 섹스에 대한 인식의 발전사를 다룬 책으로 제목만을 보고 딴 생각(?)을 품는다면 실망하기 쉽다. 1만8,000원.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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