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재미나고 ‘최연기’(남자주인공)스러운 대사예요, 형님.” 연출자 장진이 최민식을 독려한다. 순간, 취조실의 형사 최연기를 연습하던 최민식의 눈꼬리가 더욱 치솟는다.왔다갔다 범인을 협박하는 그의 눈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다.
“그래? 사람을 죽일 때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럼 나도 하나 물어보자. 제 정신이 아닌 놈들은 죄다 사람을 죽이니? 아니면 사람이 죽을 땐 항상 제 정신 아닌 놈이 있나? 온전한 정신일 때, 죽어도 사람을 죽일 수 없나?” 횡설수설 침을 튀겨 가며 열심히도 늘어 놓는다.
창작집단 수다가 16일 시작하는 ‘박수칠 때 떠나라’의 LG아트센터 연습실.
최민식(38)이 닳아빠질대로 닳아빠진 강력계 형사가 돼 무대에 돌아 왔다. 1999년 극단 유의 ‘햄릿 1999’ 이후 1년만의 연극 무대. 최민식은 1996년 극단 유의 ‘택시 드리벌’에서 입증된 장진(29)과의 두번째 화려한 콤비라는 사실에 더욱 자신만만한 눈치다.
‘택시…’로 서울연극제 남자연기상, 동아연극상을 석권했던 연기-연출 버디 아닌가.
칼에 아홉 군데 찔려 죽은 인기 절정의 카피라이터. 이 여자의 살인에 얽힌 숨은 진실을 파헤쳐 가는 하드 고어 스릴러 연극이다.
그러나 그 상황은 무대 전면의 호들갑스런 방송 중계덕에 컬트 코미디가 되고 만다. 장르의 틀을 거부하는 매우 ‘장진적’인 연극이다. 동시에 매우 ‘최민식적’인 연극이기도 하다.
“2월에 작품 쓸 때도 최민식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장진. 여타 연극과 정반대의 셋업 과정인 셈이다.
왜? “최민식에겐 사람 냄새가 풀풀 나니까.” 또 “천성적 연극 배우니까.” 예를 들어 연습때 연출이 도중에 끊으면, 최민식은 여타 배우 마냥 거기서 다시 하지 않고, 의미 단락을 이루는 데를 기어이 찾아가 거기서 다시 한다는 말이다.
그같은 태도는 연극, 영화, TV 모두 인기 정상의 배우 최민식을 빚어냈다. 최민식은 1년에 영화 두 편-연극 한 편, 또는 영화 한 편-연극 두 편이라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연극 ‘택시 드리벌’, 영화 ‘쉬리’로 내로라하는 주연상을 죄 휩쓴 그는 “나는 아직 멀었다”고 자신의 성과를 일축한다.
특히 연극은 자신의 연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 날이 갈수록 실망과 자책, 겁이 늘어간다며… 지난해 9월 김활란(31)씨와 결혼 이후 갖는 첫 무대라는 점도 그에겐 각별한 의미를 띤다.
최형사의 취조에 점점 독기가 오른다. “되도 않은 썰 까지마. 너,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봤니? 아니면 ‘프라미얼 피어’는, ‘양들의 침묵’은 봤냐? 그럼 ‘텔 미 썸싱’은?” 육두문자 속에 첨단 컬트 무비의 제목이 줄줄이 꿰인다.
장진의 재기를 능히 소화하는 최민식의 좌충우돌이 점입가경이다. 16-30일까지 LG 아트 센터. 화-금 오후 8시, 토 오후 3시 7시, 일 오후 2시 6시, 월 쉼. (02)2005-0114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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