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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막전막후] 산울림 '사랑이 가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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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막전막후] 산울림 '사랑이 가기전에'

입력
2000.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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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와닿는 사실연기매체다, 포스트모던 연극이다 뭐다 해서 인간(배우)은 무대에서 떠밀려 나는 시대에 우리 연극은 살고 있다. 그러나 극단 산울림의 ‘사랑이 가기 전에’는 요즘 연극적 추세를 거스르는, 어찌 보면 반시대 ‘연극’이다.

배우들의 연기력으로만 나아가는 무대이며, 파격적인 내용이나 주장도 없다. 그러나 그 고집스런 사실주의가 지금, 오히려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1시간 40분의 상연 시간은 우리 시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가족 해체, 그러나 가족이란 가치는 결국 애써 지켜져야 할 것임을 차근차근 들춰내 보인다.

무대의 시작은 갈갈이 찢겨지기 직전의 어느 가족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둘째 아들이 사업에 망했다.

교사생활 40년의 자존심을 간직한 노모, 어머니의 위독 소식에 6년 만에 귀국한 큰 아들, 어머니의 재산을 빼내 남편의 사업에 쓸 궁리만 하는 딸 등 이 가족은 난파 직전이다.

거덜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큰 아들과 딸은 실은 눈치밥이다, 실은 빚더미다, 모두 뒷걸음질치기 분주하다. 결국 노모는 매일매일 찾겠다는 둘째 아들의 말에 떠밀리듯 요양원행을 택하게 된다.

극은 하나의 단어를 되뇌이며 이 시대가 잃어가고 있는 가치를 환기시켜 준다. ‘(영혼의) 떨림’이다. 이 테크노 시대, 사실 한참 철지난 소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인간 앞에서 영혼이 떨 수 있다는 심리적 정황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 것은 이 연극이 주는 또다른 감흥이다.

컴퓨터 통신을 주제로 한 매체 연극 등, 최근 들어서 신세대 감성의 무대에만 주력해 온 나자명(33)이 사실주의 연극의 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그의 또박또박한 몸짓과 언어 구사는 당찬 신세대 처자를 그려내는 데 안성맞춤이다. 노련한 배우들 사이에서 드러난 그의 다른 면모는 이 연극의 또 하나의 수확이다.

‘사랑을 주세요’ 등 차분한 사실주의 무대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 온 연출자 김순영(40)씨는 “배우 훈련이나 제작비 등의 난관이 극복되기만 한다면 사실주의는 연극의 진수”라고 말했다.

이 광속의 시대, 안단테로 우리를 침잠시키는 ‘사랑이 가기 전에’는 26일까지 산울림소극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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