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어느 영어 참고서에 실린 짤막한 글에 굴을 이 세상에서 먼저 먹기 시작한 사람만큼 용감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굴을 즐기는 사람들은 눈 하나 찔끔 하지 않을 일이겠지만 날 굴은 참 징그럽게 생긴 게 사실이다.우리는 동물들을 흔히 초식동물과 육식동물로 나눈다. 하지만 들에서 풀을 뜯던 소가 어느 풀잎에 진딧물이 앉아 있다고 해서 가려 먹지는 않는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붉은 큰뿔사슴들이 풀숲 둥지 속의 새끼새들을 넙죽넙죽 집어먹는 것을 여러 번 관찰했다. 제인 구덜 박사도 초식만 하는 줄 알았던 침팬지들이 게걸스레 고기를 먹는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하고는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동물들이 주로 먹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우리가 그들을 양분하는 것이지 그들이 항상 우리의 분류체계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자연계에서 인간처럼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는 동물은 그리 흔하지 않다. 지역과 종족에 따라 음식문화처럼 판이하게 다른 것도 없다. 내가 파나마의 스미소니언 열대연구소에 있던 시절 얘기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생물학자들이 어느 날 서로 자기 집 자랑을 하는 골목길의 아이들처럼 각기 자기 나라의 기이한 먹거리풍습을 늘어놓게 되었다. 개고기는 처음부터 종목에서 제외되었다. 이탈리아나 그리스에서 온 친구들의 자랑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우린 멍게도 먹는다”는 나의 폭탄선언에 싸움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국제경기에서 내가 금메달을 딴 유일한 경험이었다.
동물들의 식단을 조사해보면 대체로 우리보다 훨씬 보수적이다. 조상 대대로 먹던 것을 그대로 먹고 산다. 그들이라고 갑자기 발견한 맛있는 음식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새로운 식단을 개발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래 전 영국에서는 이른 아침 집 앞에 배달된 우유병의 마개를 찢고 기름켜를 먹는 박새들이 등장했다. 결국 우유배달회사는 돌려서 닫는 마개를 써야 했고 박새들은 다시 예전에 먹던 뻑뻑한 음식으로 돌아가야 했다.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모든 먹거리들은 다 오랜 기간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특별한 요리법으로 개발된 것들이다. 식물은 모두 곤충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이른바 2차 화학물질(secondary chemical)이라 부르는 독성물질을 지니고 있으며 야생동물의 몸은 온갖 기생충으로 들끓는다. 인간이 기르는 농작물이나 가축들은 모두 맛이나 생산성도 고려했지만 이같은 해로운 요소들을 제거한 ‘안전한’ 먹거리들이다.
야생동물의 포획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얼마 전 강원도에 산불이 났을 때 발목이 덫에 잡혀 까맣게 타버린 동물들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명색이 동물행동학자이지만 연구를 하고 싶어도 개체수가 부족하여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밀렵꾼들이 그나마 씨를 말리고 있다. 이제 야생동물을 잡는 사람은 물론 그를 먹는 사람도 엄벌에 처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야생동물을 먹는 이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 자연보호는 둘째치고 건강만 생각하더라도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일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최재천 서울대교수
생명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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