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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평양 8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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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평양 8경

입력
2000.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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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 봄놀이(密臺賞春), 부벽루 달맞이(浮碧玩月), 영명사 가는 길(永明尋僧), 보통강변 능수버들 숲(普通送客), 대동강 뱃놀이(車門泛舟), 연당지 연꽃(蓮塘廳雨), 반룡산 석양(盤龍晩翠), 봄비에 불어난 대동강물(馬灘春漲). 조 휘(趙 諱)가 읊은 평양 8경이다. 금수산 을밀대 주변의 경치는 평양의 으뜸경관으로, 특히 진달래와 복사꽃이 만발한 봄날 이 산을 오르며 꽃을 즐기는 평양사람들의 모습이 8경의 제1경으로 꼽혔다.■모란봉 동쪽 깎아지른 청류벽 위에 서 있는 정자인 부벽루에 올라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달을 보는 정취가 두번째다. 청류벽 위에 있던 평양 10대사찰 영명사 가는 길의 아름다운 경치와, 이 절 스님과 차를 마시면서 담소하는 정경을 3경으로 꼽은 것은 마치 그림 같다. 보통강변 버드나무 숲에서 벗을 떠나보내는 모습을 4경으로 취한 것도 선비다운 아취가 있다. 가장 서민적인 풍광은 평양 외성 차피문(車避門) 밖의 대동강 뱃놀이였을까.

■연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6경으로 택한 데서 시심 깊은 취향이 엿보인다. 그 연못이 어디 있던 것인지 알 수 없어 어느 못이건 8경이 될 수 있음이 평양8경 또 하나의 묘미다. 반룡산 연봉과 구름 위로 지는 석양은 인생 만년의 정감을 상징하는 듯하다. 봄비 끝에 불어난 대동강 북쪽 마탄 여울에 떠가는 작은 낚싯배들과, 강물에 흐르는 복사꽃 이파리들을 마지막 경치로 삼은 데는 짧은 봄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담긴 것 같다.

■관동8경 단양8경 같은 말들은 우리 귀에 익숙하련만 평양8경이란 것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인구의 절반을 넘는다. 출근준비를 서두를 때 서울을 떠난 김대중대통령이 아침회의 시작 전 순안공항에 도착한 모습이 방영되었다. 서해 상공으로 우회한 비행시간은 불과 47분. 이토록 지척인 땅에 첫발을 딛는데 55년이 걸렸다. 내일이면 그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육로로 돌아온다. 평양8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가 대통령과 함께 오기를 고대하는 것은 실향민들만이 아니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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