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을 한다고 처음 발표했을 때에는 선거철이기도 해서 모두들 미덥지 않은지 시큰둥했었다. 우선 역대 정권마다 남북관계나 통일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했고 외세의 압력이나 개입으로 오히려 긴장이 고조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모두들 큰 기대는 하지 말고 일단은 두 분의 만남에나 의미를 두자고 말했다. 너무도 믿기지 않더니 이렇듯 두 분이 만나다니!
‘아라비안 나이트’라고 하는 고전에 호리병 속에 갇힌 마왕의 우화가 나온다.
처음에 100년 동안 좁은 호리병 속에 갇혀 있을 때에는 누구든 자기를 꺼내주기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을 주리라고 작심한다. 다음에 100년 동안은 누군가 꺼내주기만 하면 모든 소원을 들어주리라 생각한다.
그러다가 다시 100년이 되자 절망한 나머지 꺼내주기만 하면 단번에 쳐 죽여 버리겠다는 증오의 마음으로 변한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위기에 처한 사람이 꾀를 내어 마왕에게 도무지 그 좁은 병 속에 들어 있던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더니 마왕이 호리병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였고 뚜껑을 막아서 다시는 나올 수 없게 되었다.
분단 반 세기가 지나는 사이에 분단 첫 세대는 거의 세상을 떠났고 요즈음 젊은이들은 통일을 별로 바라지 않거나 북에 대하여 무관심한 사람이 많다고도 한다. 기대는 크게 가지되 실천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
나라의 평화적 통일이 우리 대의 과업일 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들의 삶에도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깨닫고 남과 북이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이제 첫 징검돌을 놓는 일을 가지고 실망해서 돌아서거나 냉소적으로 방관한다면 우리는 다시 불신과 대결이라는 호리병 속에 갇히고 말 것이다.
남북 모두 현실과 대의명분상의 의제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기본적인 화두는 이제 다시는 ‘싸우지 말자’는 내용이 되어야겠다.
한반도의 위기를 통해서 자국의 정치·경제적 이익과 패권을 유지하려는 주변 강대국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북은 이 기회에 확실하게 한반도의 평화를 약속해야 하고 민족문제에서 주도권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두 정상의 ‘한반도 평화선언’이야말로 민족과 세계에 보내는 새 세기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작고한 김일성 주석과 문익환 목사는 해방이자 분단 50주년이던 1995년을 성서에 나오는 ‘희년’으로 삼아서 반드시 통일의 단초를 열 것을 약속했었다.
그때에는 억눌리거나 헤어지거나 싸우던 이들이 모두 놓여나고 만나고 화해하는 축복의 해라고 성서에 씌어 있다. 비록 5년이 늦어졌지만 우리는 막힌 강물을 트듯이 교류를 실천해야 한다.
먼저, 일제 식민지시대 이래로 나라를 잃은 백성들은 만주 시베리아 일본 하와이 미주 등지로 흩어져 갔고 외세가 그어놓은 분단으로 인해서 또다시 남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분단 반세기 동안 한반도의 민중은 남에 있든 북에 있든 저마다 제 고장에 살고 있어도 본래의 국토 공간을 상실하였으므로 모두가 상징적인 실향민이 되었다.
해외동포들은 또한 분단으로 하여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없는, 나라를 잃어버린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두 분 정상만 만나실 게 아니라 이들 백성 모두가 만나야 한다.
경제교류는 약육강식이 아니라 밤 사이에 벼이삭을 서로 나르는 옛이야기의 형제들처럼 서로 돕자고 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남북이 각각 국가예산의 거의 3분의 1을 전쟁비용으로 낭비하면서 반 세기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북은 전쟁 시기에 초토화했던 살림을 10년 동안에 식민지 시대의 몇 배로 복구했고, 남은 지난 30년 동안에 서구의 300년 기간에 맞먹는 자본주의 산업화를 이루었다.
대단한 민족적 저력이 아닌가. 우리가 협력한다면 남측은 선진기술을 축적할 여건과 시장경쟁력을 10여년 연장하는 셈이 되고, 북측은 일찍이 남이 그랬듯이 근대화의 토대를 다질 수 있다.
그동안 남북의 문화교류를 보면 서로가 다른 체제와 이념 속에서 형성된 이질적인 문화를 은근히 고집하면서 경쟁적이고 냉소적으로 비교하는 자세를 가졌던 것같다.
남은 북의 문화를 촌스럽게 이념 선전 위주며 획일적이고 경직되어 있다고 비양거리고, 북은 남의 문화를 외래지향적이고 퇴폐적이라고 냉소했다.
문제는 문화교류의 기획 자체가 민족이 화합하고 언젠가는 통일을 하겠다는 아무런 전망이나 원칙없이 일회적인 행사로 그쳐 버린 것이다. 앞으로는 되도록 민족정서의 공통분모를 확인할 수 있는 전통적인 문화 일감들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서로 상대방에게 이질적인 것은 피하고 상대가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주제나 내용부터 접근해야 할 것이다. 미리 논의가 이루어진 공동의 주제를 놓고 쌍방이 합작하고 같이 참여하는 형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겠다는 자세만 확실하다면, 남북 사회의 이념적 차이까지도 ‘자유와 평등’이라는 서로에게 모자란 생각들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소망이 다만 어리석은 꿈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소설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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