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바둑판 벽지인가” 그의 ‘가족이야기’ 시리즈 중 한 점(사진)을 본 첫 느낌은 그랬다. 격자 모양의 방을 가득 메운 기호들은 얼핏 무의미한 기호의 반복과 변주 같다.화가의 의도가 어떻든 기하학적 추상화가 대체로 도시적 장식으로 애용된다는 점에 비추면 더욱 더. 한데, 그의 격자 속 기호들이 덜 도시화된 탓일까.
가만 보면 자꾸 자꾸 눈 앞에서 꿈틀댄다. 그것은 원숭이, 호랑이, 거미, 꽃, 나뭇잎, 비행기, 아파트 등을 닮았다. 기호의 병렬과 결합, 충돌은 묘하게 울려 퍼진다.
꿈틀댐은 다름아닌 생명의 몸짓이었던 게다. 이를 일러 ‘우주적 생명 공동체’라 할 만하지 않을까. 프랑스 미술평론가 필립 다장이 그의 작품을 ‘간추린 우주론’이라 부른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30여년의 화력 동안 ‘황소’, ‘가족이야기’등으로 널리 알려진 황영성(59· 조선대 부총장). 70년대 농가, 소 등 농촌의 가족 공동체를 그렸던 그는 1990년대 들어 ‘우주적 생명공동체’, 그 태초의 문명이 남긴 보편적 기억 속으로 잠입해간다.
이것이 그를 세계 무대로 진출시키는 힘이었던 모양이다. 1996-1997년 파리, 런던 등 대규모 유럽 순회전을 개최하며 국제적 명성을 쌓은 그는 현재 프랑스 생레미의 반고호 기념 현대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갖고 있다. 동양화가로서는 처음 갖는 초대전이다.
그가 13-25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2년만에 갖는 국내 개인전. ‘가족이야기’ 시리즈 등 50여점의 최근작이 선보인다. 90년대 들어 시도되고 있는 ‘격자 공간 속 생명 기호의 율동’은 시각적으로 더욱 경쾌해졌고, 상징성도 고도화 됐다.
오랜 작업 뒤 성취한 표현력이 바탕이 됐지만, 결정적 계기는 1990년대 초반 2년에 걸친 몽골리안 루트 여행 덕분. 알래스카, 멕시코, 페루 등을 돌며 인디언, 아즈텍, 잉카의 고대 유적지를 접한 경험은 새로운 도약이었다.
우주 가족으로의 확장은 또한 문명의 먼 기억 속으로 그를 이끌었다. 미술평론가 이영철은 그를 “지구촌의 밭을 가는” 작가라고 평했다. 자기 내면 속에서 과거로의 여행을 반복하며 문명 밑바닥의 이미지와 흔적을 건져올린다는 뜻. 때문에 그림은 더욱 시적이고 상징적이다.
보편적으로 확대된 그의 ‘가족이야기’는 남북간 역사적 화해 분위기 속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그림 속 생명 공동체의 조화를 이를테면 남북 상생의 합창이라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02)734-6111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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