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방북 하루전인 12일 낮 청와대내 정원인 녹지원을 이희호 여사와 함께 거닐었다. 김대통령 내외는 연못의 물고기에 먹이도 주고 벤치에 앉아 나무들과 새들을 가리키며 담소를 나눴다.보고차 달려온 박준영 공보수석에게 “날씨가 참 좋군”이라고 만 했다. 이어 관저로 올라가 기르는 진돗개 처용과 나리에게 먹이를 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산의 꽃들도 살펴보았다. 박대변인은 그 모습을 “편안 그 자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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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은 준비가 끝났음을 알려주고 있다. 김대통령은 전날 청와대를 떠나 시내 한 호텔에 머물며 마지막 ‘숙제’인 출발성명 도착성명 만찬사 등 연설문을 마무리지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인물탐구, 예상 의제와 해법, 북한의 협상스타일 등은 이미 숙지했다. 북한을 다녀온 인사들, 전직 안기부장,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조언도 들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진짜 고심하는 대목은 보고서나 자료의 내용들이 아니고 북측, 특히 김정일위원장의 진심이 무엇이냐다. 북측이 정상회담에 응했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고 있지만, 직접 김위원장을 만나서 확인해야 할 사안이 너무나 많다.
취임후 줄기차게 포용정책을 추진했고 전 세계를 동원해 북한을 설득, 남북 정상회담까지 이끌어냈지만, 이는 어떤 의미로는 시작일 뿐이다.
그래서 김대통령은 정상회담이 합의된 이후에도 “욕심을 내지 않겠다”“가능한 것부터 합의하겠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이는 우리 국민에 대한 설명이지만, 한편으로는 북한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대통령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의 근세사를 자주 언급한다. 당시 이 땅의 지도자들의 판단착오가 일제 압제, 분단, 전쟁 등 100년의 고통으로 이어졌다는 게 김대통령의 역사 인식이다.
김대통령이 김위원장에게 할 얘기도 바로 ‘역사에 대한 책임’이다. 김위원장이 이에 동감한다면, 김대통령은 “남북의 겨레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자”며 구체적인 논의를 할 것이다.
김대통령은 지난 주말(10일) 자유로를 달릴 때에도 어떻게 하면 김위원장의 마음을 읽고 움직여 남북의 역사를 감동적으로 쓸 것이냐를 생각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김정일국방위원장
분단 55년만의 첫 남북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생에서 가장 바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김위원장은 회담 상대인 김대중 대통령의 신상자료와 남측 언론보도를 보고 받은 뒤 김용순 당비서 등 측근들과 함께 회담전략을 숙의했을 것이다.
이번 회담의 중차대한 의미를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위원장으로서는 성공적인 회담진행에 부담을 느낄 게 틀림없다. 정상회담을 하루 연기했기 때문에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김위원장은 우선 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자주 떠올렸을 것이다. 필생의 과업을 이루지 못한 채 1994년 정상회담 직전 눈을 감은 김주석을 회상하면서 정상회담 밑그림과 향후 한반도 판세를 가늠했다.
“아버지였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자문을 여러차례 던졌다. 72년 2월 2인자에 오른뒤 22년간 김주석에게서 배운 제왕학, 6년간 북한을 직접 통치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어떻게 응축해 드러낼지에 대해서도 적잖이 고민했을 것이다.
김위원장은 지난달 중국 방문시 “남쪽의 생각을 들어 보려한다”며 담담하게 말했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55년간 북한체제가 쌓아올릴 정수(精粹)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중압감도 느꼈을 것이다.
김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이 공식적으로 세계무대에 첫 등장하는 기회라는 점을 의식,‘정상국가’ 지도자 이미지 형성에도 정성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으로 ‘불량국가’의 낙인을 지우고 대내적으로 확고부동한 수령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이다. 대북관계 정상화에 초점을 맞춰 회담을 지켜볼 미국과 일본의 시선도 의식해야 한다.
김위원장은 특히 정상 개인간 신뢰 관계 형성에도 무게를 두려할 것이다. 남북관계 주역인 김대통령과의 양자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득실계산이 서있을 게 틀림없다. 연장자인 김대통령을 적절히 예우하는 모양새에도 세심한 손길이 미칠 수밖에 없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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