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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드-후세인'영원한 앙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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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드-후세인'영원한 앙숙'

입력
2000.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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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사망한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아랍의 패권을 둘러싸고 시종일관 대립해 온, 자타가 공인하는 앙숙이자 맞수 관계였다.두사람은 아랍 단합을 표방한 바트당의 창당멤버였으며 철권통치라는 정치스타일도 동일하다. 반면 둘은 대통령으로서 공식적 만남은 한차례도 갖지 않았고 바트당, 이란 및 레바논 문제, 걸프전 등 아랍권 주요 이슈를 놓고는 늘 견원지간임을 보여왔다. 1991년 걸프전 당시에는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치닫기도 했다.

둘의 경쟁관계는 1947년 시리아에서 발족한 바트당이 범 아랍화를 모토로 개최한 66년 전당대회에서 주도권을 둘러싼 치열한 이념논쟁을 펼치면서부터 촉발됐다. 후세인은 아랍을 아우르려는 ‘민족 지휘부’에 대한 시리아의 권위를 부정한 뒤 이라크 바트당 대회를 별도로 창설, 별도의 당조직을 유지하며 반목해왔다. 또 아사드가 군을 배경으로 1970년 실권을 장악한 반면 후세인은 사관학교에 입학실패했고 1979년에야 권력을 잡은데서 비롯된 자존심대결도 대립을 부추기는데 한 몫했다는 평가다.

이집트가 1978년 이스라엘과 평화를 추구하자 강력한 반유태 입장을 견지해 온 시리아, 이라크는 한때 화해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후세인이 1979년 집권 후 시리아를 국내 반세력의 배후로 지목하면서 관계는 다시 틀어졌고 이라크의 이란침공을 계기로 국교마저 단절했다.

두 국가는 90년대 말부터 경제를 중심으로 협력을 꾀하고 있는데다 카리스마가 부족한 바샤르가 집권한다면 이라크에 순종적 개방을 강요당할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이주훈기자

ju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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