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 일정이 북측 요청으로 당초 12일에서 13일로 하루 연기됐다. 북측이 10일 늦게 긴급 전언통신문을 통해 김대통령의 방북일정을 하루 늦춰주도록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북측은 통신문을 통해 ‘기술적인 준비관계’라고 순연(順延) 요청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회담을 불과 이틀 앞두고 합의된 전체일정이 변경되는 일은 정상 외교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정부가 북측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회담은 일단 차질없이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런 일정 변경 과정을 지켜 보면서 우리는 반세기 이상 단절된 남과 북이 화해로 나아가는 여정이 얼마나 험난할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북측이 순연 이유로 든 기술적인 문제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현시점에서 알 길이 없다. 북측의 태도로 보아 일정을 수정해야 할 불가피한 사정이나 필요성이 급하게 제기된 것이 아닌가 추정될 뿐이다. 방문을 불과 30시간도 채 안남긴 시점에 부랴부랴 긴급 전언통신문을 보낸 것이 이같은 정황을 나타낸다고 본다.
북한은 김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여러 면에서 착실한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시내 도로망을 정비한다든지, 김 대통령이 도착하는 순안비행장의 활주로를 손질하는 등 나름대로의 대비를 해왔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북측이 밝힌 기술적인 문제는 바로 자신들이 계획하고 수행해온 이런 준비가 일부 차질을 빚은 때문이 아닌가 판단된다. 완벽한 준비를 위해 하루 더 시간을 벌어 미흡한 부분을 마무리짓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으론 국내언론의 방북일정 보도와 관련짓는 시각이다. 최근 국내 언론은 확정되지도 않은 회담일정, 참석자, 행사 방문지 등을 추측보도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평양측이 국내언론의 추측보도와 관련, 김대통령의 안전문제를 이유로 들어 일정변경을 통보했으리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그간 몇차례 확정되지 않은 사실의 추측보도가 정상회담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한 점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분단사, 내지는 세계평화 정착에 한 획을 긋는 대사(大事)다. 정부의 주장처럼 과열 보도경쟁이 회담에 걸림돌이 된다면 자제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북측의 정확한 순연요구가 무엇이든간에 정상회담은 하루 늦게나마 차질없이 열릴 것이다. 분단 55년만에, 그것도 3년 간의 참혹한 민족상잔의 전쟁을 치른 남과 북이 최초로 정상 대좌를 갖는다. 우리는 이 만남이 민족사에 희망의 새 지평을 여는 역사적 소명의 자리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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