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고속버스. 술에 취한 아줌마 아저씨들이 한판 ‘돌리는’ 분위기. ‘이히, 우후’ 추임새와 함께 빠르게 돌아가는 전자음 물씬한 뽕짝 메들리. 이들 문화는 퇴폐한 중장년 문화로 치부되어 왔다.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테크노 뽕짝’ ‘뽕짝 테크노’라 불리는 메들리 음악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 떴다, 이박사
‘저는 뽕짝을 대하는 우리 주위의 냉소적인 모습들을 보며 하루하루를 희망없이 살다가 이박사님의 소식을 듣고 아! 이제야 광명이 보이는구나! 하고 하염없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나이다’(작성자:그들은 왜 나를 싸이코라 부르는가) ‘박사님 젊은이들이 보는 쇼방송에 나가셔서 요즘 기계로 만든 노래로 가창력을 인정받는 가수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작성자 손우식) ‘우연히 영동고속도로에서 구입한 뽕짝 테이프에서 나는 새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주옥같은 박사님의 애드립에 뿅갔고 놀라운 가창력에 갔다. 립싱크나 하는 X세대 가수들보단 실력으로 승부하는 진정한 뮤지션인 이박사님이우리 N세대 영웅이십니다. 박사님 보고파’ ‘이시대 마지막 뮤지션 이박사 팬클럽’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10, 20대로 보이는 팬들의 뜨거운 글들이 올라있다.
한마디로 뜨고 있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열혈팬층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으며, 달파란, 볼빨간 등 젊은 테크노 뮤지션들이 그의 노래를 샘플링하는 작업을 선보인 지 오래다.
▥ 키치 상품의 하나?
젊은이들에게 신바람 이박사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재미있는 노래 한곡을 발견하면 음악파일로 올려 이곳저곳으로 전송하는 신세대들의 인터넷 문화는 구입이 어려운 ‘고속도로 메들리’의 유통경로를 확 바꾸어 버렸다.
음악적 특색은 즉흥성이다. ‘우리리리히’(신바람 이박사는 꼭 이렇게 써달라고 주문했다)하는 호루라기 소리 등 다양한 애드립(신기에 가깝다),
몽환적이며 빠른 키보드의 전자음은 ‘고속버스 메들리’에 대한 선입견이 적은 신세대들에게는 오히려 신선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반짝이, 머릿수건, 9부바지로 대표되는 1970년대 패션. 여러 문화적 코드를 ‘촌스럽게’ 재조합하는 ‘키치’문화가 확산되면서 각계엔 ‘촌스러워지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차력사, 신파극을 차용한 광고 등. 고속도로 뽕짝 메들리인 이박사의 노래에 대해 젊은이들이 빠지는 것도 이런 ‘첨단 유행’중의 하나로도 볼 수 있다.
기존 트로트가 가졌던 가사와 곡조의 엄숙주의를 통렬하게 흔드는 이박사의 재기발랄한 가사와 곡조 역시 신세대 취향에 ‘딱’이다.
윤수일의 ‘제2의 고향’을 리메이크한 그룹 ‘노이즈 가든’, ‘쿨’의 김성수가 음반마다 선보이는 ‘뽕짝’ 한곡, 이런 유행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 가장 경쟁력있는 한국형 테크노, 테크노 뽕짝
이박사의 전자음악을 ‘한국형 테크노 뽕짝’으로 승격시키려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의 움직임 역시 만만찮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볼빨간’(테크노 뮤지션 ‘달파란’에 대한 오마쥬(숭배) 차원의 이름이다)은 캬바레 레이블에서 ‘지루박 리믹스 쑈!’, 달파란이 영화 ‘거짓말’에서 선보인 ‘육체의 환타지’(이박사의 ‘청산유수’의 샘플링)가 바로 신바람 이박사의 노래를 샘플링 하거나 차용해 만들어진 음악이다.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고 있는 사람은 김형태. “‘논스톱 디스코 메들리’라는 음반은 세게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유니크함을 갖고 있다.
그것은 서구의 DJ 문화보다 먼저 믹스 개념을 레코드에 활용했다는 점이고, 그리고 트로트이건 팝송이건 그 어떤 기존의 음악도 ‘뽕짝화’ 시킬 수 있다는 놀라운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타 중심의 감상용 음악에서 철저히 기능위주의 음악으로 변모한 점도 범세계적 테크노의 역사에 비춰보아도 대한히 앞서간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정서 깊숙히 파고든 뽕짝의 부인할 수 없는 매력, 전자 키보드 하나에 입으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소리가 갖는 ‘생음악’의 매혹이 더해진 게 테크노 뽕짝의 실체이다.
반복적 전자음의 음악인 테크노 시대를 맞아 다시금 ‘재평가’의 기회를 제공받게 된 것이다.
중장년 층만의 ‘은밀한’ 공간이었던 캬바레 음악을 ‘먹물’ 냄새나는 언더그라운드 음악들이 재평가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시대. 재미있는 세상이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신라의 달밤' '목포의 눈물'…
김치와 더불어 우리 문화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 ‘뽕짝’. 댄스 테크노에 밀려 자리를 잃는가 싶더니 세기말의 기진맥진을 분연히 딛고 금세기 강력한 문화 코드로 떠오르고 있다.
그 실체중의 하나가 바로 뽕짝 영화. 고교 동창이 15년만에 만났는데 하나는 학교 교사, 하나는 날건달. 두 사람의 우정과 애증을 그릴 이 영화의 제목은 ‘신라의 달밤’이다.
시네마서비스에서 제작하며 한동안 메가폰을 놓았던 강우석 감독이 야심차게 준비했었으나 개인적 사정으로 ‘주유소 습격사건’의 김상진 감독에게로 바통이 넘어갔다.
박중훈, 이성재가 주인공 물망에 올랐으나 김감독 체제 하에서 그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
한때 ‘목포의 피눈물파’를 이끌었던 왕년의 주먹. 출소한 후 그가 겪는 상전벽해를 ‘아저씨 액션’을 표방한 장르 영화로 그려낼 예정이다.
주인공은 ‘어, 어’의 주인공 오지명. 신예 강경환이 감독을 맡을 예정으로 영화제목은 ‘목포의 눈물’.
‘8월의 크리스마스’로 미니멀한 감성영화를 선보였던 허진호감독은 고색창연한 ‘봄날은 간다’를, 장형익 감독은 ‘맨발의 청춘’을 각각 준비 중이다.
신씨네에서도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영화 제목을 두고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이런 영화 제목들이 잇달아 나오는 것은 잊혀졌던 프로레슬링을 다룬 ‘반칙왕’ 같은 복고풍 영화가 인기를 끄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이은 영화의 복고주의는 익숙한 옛 문화에 대한 패러디, 혹은 풍자, 그것도 아니면 희화화라는 요즘 ‘패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버지 나는 누구예요”(016 ‘Na’광고)하는 빈티지(Vintage:낡은) 스타일의 광고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그런 현상 중의 하나로 해석된다.
여기에 뽕짝에 대한 선호도와 상관없이 익숙한 노래 제목을 차용함으로써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도 한몫한다.
영화 내용이 얼마나 ‘복고’감성에 충실할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으나 영화계에서도 이 감성이 ‘호객’의 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박은주기자
■신바람 이박사는 누구
신기의 애드립… 환상의 키보드… 일본서도 폭발적 인기
신바람 이박사(46·이용석)는 중국집 배달원, 이발소 요정 종업원, 구두닦이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1979년 관광버스 안내원이 되면서 재능을 발휘했다.
노래방 기계가 없었던 때라 리듬박스 기계에 맞추어 손님들을 위한 여흥시간을 마련했다. 그러나 단조로운 노래가 싫어 다양한 효과음을 개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모르는 노래가 없다며 손님이 지어준 별명이 이박사. 1989년까지 10년간 안내원 생활을 하다 두시간 만에 녹음한 ‘신바람 이박사’라는 카세트 테이프를 발매, 주로 버스기사들, 중장년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 진출하게 된 것은 순전히 입소문 때문. 소니 관계자가 소문을 듣고 “어떤 가수인가” 보고 싶어했고, “키보드 하나로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독특한 테크노”라는 평가를 들으며 전격계약했다.
일본을 자주 오가며 6장의 음반을 발매했고, 15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우리나라 세종문화회관 격인 도쿄 무도관에서 공연을 가졌고, 일본 후지TV ‘헤이 헤이 헤이 뮤직캠프’에 외국인 아티스트로는 처음 출연했다.
1장을 제외한 음반은 모두 우리말로 불렀는데, 일본에서도 10대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뽕짝백과사전’ ‘이박사 대(對) 덴끼 그루브:열려라 뽕짝’등 많은 음반 중 경기민요를 리믹스한 ‘민요디스코 메들리’, 자작곡인 ‘인생은 60부터’를 가장 아끼는 곡으로 꼽는다.
뽕짝 뿐 아니라 디스코 메들리도 많지만 결국엔 뽕짝이다.
회갑연, 호텔 나이트 클럽 등에서 하루종일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1998년 일본에서 발매한 ‘나는 우주의 판타지’를 우리말로 불러 7월 소니뮤직코리아에서 발매할 예정이다.
“좀 더 환상적인 그런 느낌이 강해진 거지 뭐, 청산유수보다 더 세련된 거.” 음반 설명을 마친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 인사했다. “잘 부탁해, 언니.” 그가 이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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