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가 망가지고 있다.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가 이미 주택가까지 파고든데다 단독주택 가구수 위반 등으로 주거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앞으로는 초고층 주상복합주상건물도 줄줄이 들어설 전망이어서 인구 과밀화의 우려를 낳고 있다. 깨끗하고 쾌적한 계획도시로 가꾸겠다는 당초의 목표가 오래전에 사라진 신도시의 난개발 실태를 살펴본다.잇따른 주상복합용도 전환 성남과 고양시 등 자치단체들은 도시설계변경 권한을 이용, 신도시의 미분양된 땅을 잇따라 주상복합용도로 전환하고 있다.
인구 40만의 분당은 백궁역 일대 업무 및 상업용지 8만평을 최근 주거용지로 용도변경했다. 고양시는 유통업무시설 용지로 지정된 백석동 출판문화단지(3만3,000여평)에 55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도시설계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팔리지 않는 땅을 방치하느니 용도를 변경, 개발도 하고 세금수입도 높이는 게 낫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인구 과밀화와 교통혼잡이 우려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유흥업소 난립 속수무책 신도시 주택가 주변에는‘꿈의 전원도시’와는 어울리지 않게 단란주점과 러브호텔을 비롯한 각종 유흥업소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그중에도 일산은 주택가 주변 상업용지에 이미 러브호텔이 빼곡히 들어차 주거 및 교육환경 침해정도가 가장 심각하다. 특히 ‘학교환경위생 상대정화구역’인 대화역 주변은 아파트단지와 10여㎙ 도로를 사이에 두고 러브호텔 10여개가 밤마다‘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고양시는 그러나 법에 따라 상업용지에는 숙박업소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없다며 방관하고 있다. 주거 및 교육환경을 위해 도시설계지침을 변경, 숙박시설 난립을 원천봉쇄해달라는 주민요구는 안중에도 없다. 하지만 이는 세금수입이라는 현실적 이익을 숨기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실제 중동은 도시설계지침 변경을 통해 퇴폐향락문화를 최대한 차단하고 있다. 부천시도 3월 아파트단지 주변 상업용지에는 객실 37개 이상의 호텔규모만 들어설 수 있도록 도시설계지침을 강화했다.
단독주택 가구수 위반 신도시마다 유통시설과 유흥업소가 증가하면서 가구수를 위반한 단독주택도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들은 전세수입을 노린 건축주들의 집단민원에 밀려 불법행위를 방치 또는 양성화해 주차난 등을 부채질했다. 분당은 당초 도시설계지침상 필지당 4가구, 3층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했으나, 지난해 7월 가구수 제한을 아예 철폐했다. 평촌도 1997년7월 제한을 폐지했고, 중동은 96년 8월 가구수를 3가구에서 4가구로 완화했다.
대책 도시계획전문가들은 신도시를 도시여건 변화 등을 감안해 체계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토연구원 염형민(廉亨民) 연구위원은“신도시에 상업업무용지 비율이 과다책정되는 등 도시설계 자체가 잘못됐다”며 “앞으로 도시기능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 인지를 정한 다음 그 방향에 맞게 용도변경여부 등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흥적이고 무분별한 도시설계지침 변경에 따라 민(民)·관(官), 민·민간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지자체들은 저마다 신도시 입주후 10년 가까이 팔리지 않아 방치된 땅들이 쓰레기장과 우범지대로 전락, 도시설계변경을 통한 개발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노는 땅을 방치하기 보다는 용적률을 낮춰 아파트나 오피스텔, 주상복합건물 등의 건축을 허가, 개발도 하고 세금도 걷겠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분당과 일산 등의 시민단체들은‘팔리지 않는 부지해소’와‘도시 균형개발’이라는 명분에 밀려 무작정 건축허가를 내줄 경우 신도시의 쾌적한 주거환경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자족시설 부족 등 주거환경이 가뜩이나 열악한 마당에 무분별한 개발은 근시안적 발상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성남시민모임과 분당지역 아파트입주자 대표자회의 등 150여개 단체가 참여한 백궁역 일대 용도변경저지대책위원회는 시장퇴진운동도 불사하겠다며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고양시민회 등 11개 시민단체도 일산 백석동 출판문화단지에는 벤처단지 또는 문화예술시설 등 자족기능 시설이 들어서야 마땅하다며 최근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또 일산 대화역 일대 주민들은 주택가에 러브호텔이 불야성을 이루자 더이상 러브호텔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도시설계지침을 변경해달라는 진정서를 시에 제출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도시설계지침 변경은 주민간 갈등까지 유발하고 있다. 백석동 출판단지의 용도변경과 관련, 백석동개발추진위원회는 다음달 3일 시의회 본회의 의견청취를 앞두고‘도시균형개발 차원에서 용도변경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시의회에 제출하는 등 ‘시민단체의 반대’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김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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