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웅 중앙인사위원장기자는 나라가 정말 잘 되려면 관료조직_공무원사회가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변화와 개혁이 급하지 않은 분야가 어디 있을까마는 아직도 모든 일은 정부에서 시작되고, 아무리 좋은 개혁 아이디어라도 공무원이 맡아서 추진하지 않으면 한갓 몽상에 그치고마는 현실에서 진정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조직을 갖추는 것 만큼 시급하고 또 시급한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광웅(金光雄·59) 중앙인사위원장을 만난 건 우리나라 공직사회가 정말 바뀔 수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행정학 교수로 정부조직과 공무원인사제도에 대해 쉼없이 문제를 제기했던 그는 작년 5월24일 공무원으로 변신, 건국이후 처음 발족한 중앙인사위원회를 1년 남짓 이끌어왔다.
결론을 미리 말한다면 ‘우리나라 공무원은 능력이 있지만 완전히 체질을 개선, 21세기형 공무원이 되려면 아직 한 세대는 더 걸린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열린 정부로 가야 한다"
-중앙인사위 발족 1년이 지났다. 1년을 보낸 소회는.
“정부 일을 한다는게 참 어렵다. 학교에서는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됐지만 정부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개혁 아이디어를 내는 건 우리 일이지만 실행하는 건 타부서다.
타부서와 호흡을 맞추는 게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았다.”
-1년 전 취임 때 세웠던 인사개혁 목표와 지금 이룬 것에 차이가 있나.
“취임당시 목표는 ‘열린 정부를 지향하자’는 것이었다. 20세기까지 우리 정부는 닫힌 정부였다.
공무원들에 의한 공무원들만을 위한 조직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는 열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다. 얼마전 48개 기관의 고위직 130개를 공무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개방하는 ‘개방형 임용제’를 도입한 것은 열린 정부로 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 자리에 능력있는 인력을 충원하는 건 각 부처에 맡기긴 했지만 이 제도 도입으로 무능하고 나태한 공직자는 퇴출될 수 있으며, 능력있는 전문가라면 일반인도 공직자가 될 수 있음을 공직사회가 알게 됐다.
목표를 달성했다면 달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앙인사위가 지난 1년간 한 일이 당초 출범때 받았던 기대에는 못미친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공직 인사개혁은 중앙인사위가, 정부조직개편은 기획예산처가 맡는 등 정부개혁이 이원화되어있어서 그렇다는 주장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조직이야기는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굳이 말한다면) 영국에서 볼 수 있는 것 처럼 인사개혁과 조직개혁은 같이 가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인사개혁의 중요성과 독립성을 중요시하는 예가 없지는 않다. 우리는 그걸 따른 것이다. 분리해도 개혁을 추진하는데는 어려움이 없다고 본다. 부처간 협조가 있다는 전제하에서 하는 말이지만….
“직무평가제는 계급중심에서 일 중심으로 가기 위한 것”
"공무원 직무평가 역점둘것"
-앞으로 역점을 둘 분야는 무엇인가.
“공무원 직무평가이다. 직무평가란 어떤 공무원이 하고 있는 일을 ‘그 일을 그가 왜 해야 하나’ ‘그가 그 일을 처리할 만큼 자격과 능력이 있는가’ 를 평가한 후 그 결과를 점수화하는 것이다.
그 점수는 곧 보수와 연결된다. 지금은 같은 5급이면 무슨 일을 하든 동일한 급여를 받지만 직무평가제도가 확립되면 계급이 아니라 하는 일에 따라 급여를 받게 된다.
같은 계급이라 하더라도 국민에게 더 가치있고 보람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은 급여를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 직무평가제도의 목적이다.
직무분석이 끝나면 공무원의 업무체계가 현행 사람 혹은 계급 중심에서 일 중심으로 전환될 것이다.”
_결국 앞으로 공직사회에서 계급이 사라진다는 말이 되는데, 행자부 등 일선부서에서는 벌써부터 공직자 계급 폐지 방침에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있지 않나.
중앙인사위의 아이디어가 이상적이어서인가, 아니면 일선부서가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인가.
“부처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빚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직무분석을 근거로 고위 공무원의 계급을 없애자는 우리의 주장에 대해 행자부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하려느냐’는 생각인 것 같고, 우리는 ‘그렇게 안하면 언제 개혁을 할 수 있느냐’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 중심으로 업무체계를 바꾸자는데 반대할 사람 어디있느냐. 사람 중심으로 일을 해오니까 지연 학연 혈연을 따지게 됐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언제까지나 반대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양자간 접합점을 찾는 노력이 계속되면 해결될 것이다.”
“산성체질을 알카리체질로 바꾸는데도 시간은 걸린다”
_한국 공무원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직무평가라는 수단을 도입했다는 말인데체질 개선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으로 보는가.
“산성 체질을 알칼리성 체질로 바꾸는데 알약 몇개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닌 것 처럼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올해 중으로 외교부와 기상청의 직무분석을 끝낼 계획이다.
나머지 부처에 대해서는 내년부터 직무평가를 시작할 계획인데 아마 평가에만 3~5년이 걸릴 것이다.”
-직무분석이 끝난다고 해서 체질이 곧 바로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 직무분석이 됐다고 해서 바로 공무원 체질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공무원 체질이 군사정부시절부터 한 세대 이상 걸려 형성된 만큼 아마도 같은 정도의 시간이 걸려야만 완전히 모습이 바뀔 것으로 본다.”
-국민들이 지금과 같은 관료사회의 비효율과 비합리를 또 한 세대를 참으면서 보내야 한다는 말인가.
“인간사회가 원래 모순덩어리 아닌가. 하나하나 덜어가는게 우리의 과제 아니냐. 누구도 그 모순덩어리를 한번에 완전히 덜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공기업 인사의 불공정이 문제”
-중앙인사위의 로고에 저울을 썼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저울은 정의 평등 자유의 상징이다. 법원의 상징도 저울이지만 인사도 공정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중앙인사위의 상징으로 채택했다.”
_그런데도 인사가 공정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무슨 이유인가. 위원장 탓이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정부의 일반공무원(군인 경찰 외무직 등 특정직을 제외한) 중앙부서의 1급에서 3급까지의 인사에 대한 심사만 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일을 하면서 나는 이 부분 인사에 대해서는 공정성이 확립됐다고 자신한다. 통계를 제시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인사가 불공정하다는 말이 나오는 건 정부가 아닌 공기업체 같은 곳에서 그런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꾸준히 인사원칙을 세워나가면 그런 기관의 인사도 공정하게 될 것이다.
비정부 부분 인사를 보고 국민들이 인사를 이따위로 하느냐고 우리를 탓하면 억울하다.”
-최근들어 낙하산 인사가 많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같은 설명이겠다?
“그렇다. 우리가 정부내의 낙하산 인사를 막은 사례가 많다. 작년 조달청차장을 임명할 때 재경부에서 조달청에 한 번도 근무한 적이 없는 사람을 1순위로 올린 것을 우리가 비토권을 행사, 되돌려 놓았다. 그러나 각 부처가 산하공기업체 등에 낙하산식 인사를 하는 것은 우리가 막을 방도가 없다.”
“한국 공무원들은 능력있는 집단”
_우리나라 공무원 집단의 특성을 말해줄 수 있나.
“첫번째는 공무원들이 타분야 개혁을 선도하는데는 앞서고 있지만 스스로를 개혁하는데는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능력이 있으나 100% 발휘를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공무원의 과를 많이 탓하기도 하지만 지난 세대의 발전은 그들의 능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IMF를 비교적 쉽게 극복한 것도 정부가 앞장서서 구조조정을 하면서 민간부문의 고충을 덜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멋'대로 멋있게 꾸민 중앙인사위 사무실
#1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어렵기는 하지만 자신의 뜻을 펼치기 쉽다는 매력도 있다.
그는 중앙인사위를 ‘멋대로’하고 있다. 중앙인사위 청사는 보통 보는 관공서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사무실 배치와 주변 디자인이 재벌기업의 신사옥을 뺨친다.
관공서 같지가 않다. 벽도 흰색 일변도가 아닌 따뜻함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색상이다. 벽에는 또 그림이 많다.
부근 화랑에서 그림을 임대해 달아놓은 것이다. 큰 돈이 들지는 않는 모양이다.
“상호신뢰, 직업에 대한 자긍심, 즐거움은 직장의 3대 요소다. 나는 인사위 직원들이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일할 수 있도록 사무실을 다른 관공서와는 다르게 꾸몄다.
하지만 초대 위원장이니만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서 이런 일이 가능했다.” 그의 책상에는 직함과 이름이 화려하게 새겨진 자개명패가 없다.
다른 직원들 처럼 그도 이름만 적힌 자그마한 플라스틱 재질의 명패를 책상 한 구석에 올려놓았다.
사무실 분위기가 일의 효율을 결정적으로 높여주지는 않겠지만 같은 돈이라면 그런 정도의 노력은 본받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신문사에 비치된 그의 개인 기사파일은 다른 교수들의 파일보다 아주 두툼하다.
그동안 발간한 22권의 편·저서가 그런 것 처럼 관료제도 의회제도 행정개혁 등에 대한 논문 소개와 이들 분야를 주제로 한 칼럼이 대분분이다.
왕성한 연구활동과 기고를 보면 행정개혁 분야에서 그가 전문가임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의 논문을 소개한 기사중 1994년에 발표한 ‘한국의 장관론’에 대한 것이 눈에 띄었다. 이 논문에서 그는 ‘교수들은 장관을 맡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그는 학자출신은 부처장악력이 없고, 정책수립능력과 집행력도 떨어지며, 타부처와 의회 및 언론 등에 대한 설득력도 떨어진다는 점을 들었다.
“교수는 장관을 하면 안된다고 했는데 위원장은 장관급 공직을 맡고 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고 묻자 그는 웃으며 “나는 장관이 아니고 장관급이다”고 말한 후 “교수를 하다 장관이 된 사람 중 성공적으로 일을 한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부처에 적응 못한 사람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계속 움직이고 있는 조직에 갑자기 들어온 탓에 조직을 장악하지 못해 왕따가 되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중앙인사위원장이 된 후 나는 한 번도 내가 장관급이라고 생각하고 일하지 않았다.
오직 맡은 일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직위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는 취임당일부터 일기를 써오고 있다면서 “일기를 보면 내가 어떻게 일해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답변만으로 본다면 그 역시 언론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약력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62
하와이대 대학원 졸업 1971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1972-현재
행정개혁위원회 위원 1988.5-1989.7
한국행정학회 회장 1991-1992
서울대 행정대학원 원장 1992-1994
사법제도개선위원회 위원 1993-1999
국회제도개선위원회 위원 1993-1999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회 위원 1997-1999
중앙인사위 위원장 1995.5-현재
편집국 부국장 정훙호 soong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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