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요청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북 일정이 하루 연기된 데 대해 크게 세 가지 차원의 해석이 대두되고 있다.순수한 준비관계로 일정 연기가 불가피했을 수 있고 안전문제 때문에 일정과 장소의 재조정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또 남북간에 비공식적으로 협상중인 의제와 관련, 북한이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전술적 차원에서 ‘일정 연기’라는 카드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는 일정 연기의 사유를 ‘기술적 준비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황원탁(黃源卓)외교안보수석이나 박준영(朴晙瑩)대변인 등은 북한이 김대통령을 맞기 위해 정성껏 준비한다는 사실을 제시하며 “순수하게 행사 준비 차원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진전송 문제나 TV생중계 문제 등 세부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대목도 있어 준비상 미흡한 점이 일정 연기의 주요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이 발표된 지가 두 달이 지난 상황에서 하루 연기가 얼마나 더 많은 준비를 담보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맥락에서 북측의 연기 의도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만약 북측이 일정 연기에 복선(伏線)을 깔고 있다면 그중 하나가 안전문제다. 북측이 그동안 줄기차게 우리 언론의 일정·장소 보도에 대해 항의를 해왔다.
이같은 항의는 주요 일정 보도가 김대통령의 안전, 나아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안위와도 직결돼 있다는 상황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측은 자기네 정상의 일정을 행사 2-3일 이후에 공개해 왔으며 우리가 그런 관행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일정의 하루 연기는 우리 언론보도와 정부에 대한 항의로 볼 수 있으며 실제 일부 일정은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달리 북측이 ‘기술적 준비관계’라는 공식적 이유, ‘안전문제’라는 내면적 이유를 제시하며 기선잡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북측이 우리 정부가 대화의 틀을 깨지 않으려고 혼신의 정성을 다하는 점을 역으로 이용, 실질적 협상에서 보다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고 사전에 ‘사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해석을 ‘음모적 시각’이라고 일축하지만 북측이 북·미 미사일협상이나 북·일 수교협상에서 보여준 ‘벼랑끝 외교’를 고려해보면 일면 타당한 측면도 있다.
어떤 의미로는 일정 연기가 어느 하나의 이유 때문이 아니고 이런 세 가지 이유의 복합 때문일 수도 있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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