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연이 줄어든다면 욕을 더 먹어도 좋아요”택시기사 지정자(池政子·61·여)씨는 서울에서 매연차량을 가장 많이 신고하는 시민이다. 지난해 시에 접수된 매연차량 신고 가운데 75%에 달하는 4,320건이 지씨의 ‘작품’이다. 서울시는 지씨의 신고만 다루는 직원을 따로 둘 정도다.
지씨가 운전대를 잡은 것은 1959년. 해가 갈수록 대기오염이 심화하고 있는 데 ‘충격’을 받은 지씨는 10여년전부터 녹색환경봉사단에 가입한 뒤 본격적인 매연차량 적발에 나섰다. 택시를 몰면서 매연차량들을 발견할 때마다 메모를 했고 이를 모아 구청과 경찰서에 보냈다.
그러나 구청이나 경찰서의 한심한 태도는 매연보다 더 참기 힘들었다. 지씨가 1주일에도 3~4번씩 매연차량들을 신고하자 공무원들은 지씨를 정신병자 취급까지 했다.
담당 직원은 업무가 폭주하자 지씨를 불러 “당신은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느냐”며 무안을 주기도 했다.
97년 송파구의 한 직원이 지씨가 보낸 신고 편지들을 찢어버린 사건은 아직도 지씨를 분노케하고 있다. 매연차량의 주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에게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98년에는 매연차량 소유자가 소송을 제기해 법원에 가서 증언해야 했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형제들은 “무슨 이익이 있다고 남들한테 욕먹을 짓을 하느냐”며 지씨를 말렸다. 그러나 지씨의 끈질긴 신고를 말리지는 못했다. 서울에는 여전히 매연차량들이 득실대고 있기 때문이다.
지씨는 오히려 공무원들과 싸우는 과정을 통해 자신밖엔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명감이 강해졌다고 회고한다.
지씨는 9일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고 건(高 建)시장으로부터 ‘서울지킴이’로 위촉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행정의 공백을 메워주는 일을 해 온 다른 8명과 함께 앞으로 시장에게 직접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시는 ‘서울지킴이’를 행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전담부서를 지정하고 이들이 보내오는 현장의 의견을 시정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지씨는 “공익을 위한 신고가 고자질로 손가락질받는 풍토가 가장 가슴 아프다”며 “모두가 자기 일이 아니라며 매연차량들을 방치해둔다면 서울의 공기는 아무도 살 수 없는 지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