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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어린 승려들의 월드컵 사랑 'C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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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어린 승려들의 월드컵 사랑 'CUP'

입력
2000.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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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강이 왜 그렇지/ 월드컵 때문이죠 / 그게 뭔가/ 두 나라가 공을 갖고 싸우는 겁니다/ 공을 갖고 싸워? 별난 전쟁이군. 폭력이 많은가/ 부상자도 생기죠/ 섹스도 있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뭣 때문에 싸우는가/ 컵을 차지하려구요/ 자넨 어찌 그리 잘 아나’노승과 주지승의 대화.‘컵(Cup)’은 다름 아닌 월드컵에 관한 영화이다. 중국 정부의 탄압을 피해 인도로 숨어든 티베트 승려들. 속(俗)의 세계를 채 알기도 전 성(聖)의 세계로 던져진 어린 수도승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은 열네살 수도승 오기엔(잠양 로도)의 마음을 통째로 흔들어 놓는다.

장엄한 의식 시간에 장난치는 철없는 오기엔이지만 월드컵 결승전을 봐야 한다는 집념만은 불꽃같다.

승복 밑에 호나우두의 등 번호를 새긴 옷을 받쳐 입고, 마침내 결승전을 보기 위해 TV를 빌려 온다는 중대한 계획을 세운다.

점술사에게서 돈을 얻어내고, 동료들로부터 한푼 두푼 돈을 끌어 모은다.

그래도 모자란 돈은 막 승려가 된 니마의 시계를 저당잡혀 채웠다. 친구의 공책을 찾아주기 위해 하루종일 뛰어나니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비슷한 느낌이다.

영화는 티베트의 승려들에까지 파고든 코카콜라와 월드컵을 이야기한다.

그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진정한 수도의 분위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량을 잃어버리고 유랑하는 티베트 승려, 그리고 속의 재미에 빠져 든 어린 수도승. 그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드러내며 강대국과 서양 문물 침략당한 티베트의 현실을 은유하고자 함은 아니다. 오히려 ‘여기, 지금’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진정한 속탈의 길까지도 깨닫게 한다.

경기가 한창인 즈음 니마의 시무룩한 얼굴을 본 오기엔은 자기 방으로 돌아와 니마의 시계를 되찾을 방법을 고민하다 어머니 유품을 집어든다.

이를 본 주지 스님은 말한다. “넌 계산에는 서툴지만 훌륭한 스님이 될 것이야.” 깨달음은 바로 휴머니즘이란 소박한 진리와 다르지 않다.

승려 감독 케인츠 노부가 만든 최초의 티베트어 장편영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큰 호응을 얻으며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했고,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었다.

9일 개봉. 오락성★★★★ 작품성 ★★★☆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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