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대표적 보수신문에 이상야릇한 사설이 등장했다. ‘남북문제는 냉엄한 비즈니스다’라는 제목부터 해괴하지만, 글의 발상과 논리는 한층 망측하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회가 지나치게 들뜨는 것을 경계하는 충정으로 보기에는 용어와 논법이 망발에 가깝다. 특히 남북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한 전략적 사고로만 풀어야 할 비즈니스라니, 이게 진정 건전한 보수여론을 대변한 정론(正論)인지 고개를 흔들지 않을 수 없다.■이 사설은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고 시작, 모처럼 좋은 일을 그르쳐선 안된다는 당부로 맺었다. 좋은 얘기다. 또 신뢰와 공존의 바탕을 이루기전에 지레 잔치마당처럼 흥분하는 모습을 걱정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그 당부와 우려는 지극히 냉소적이고, 국민과 정부를 감성만 과잉이고 ‘정교한 두뇌력’은 없는 무리로 치부하는 듯하다. 나사가 풀리고 최면에 걸린듯 하다니, 턱없이 방자한 말투에는 어처구니가 없다.
■이 글은 무엇보다 위선적이다. 이를테면 북한 핵시설을 폭격해야 한다는 식의 몽매한 강경노선을 애써 감춘채 냉정한 전략을 촉구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전략을 말하는가. 서독 브란트 정권의 화해정책을 입안한 에곤 바르는 30년전 ‘적을 동반자로 수용하는 공동안보전략’을 주창했다. 케네디대통령은 이를 ‘평화의 전략’이라 불렀다. 그밖에 다른 전략을 염두에 둔다면, 이는 목표와 수단이 모두 시대착오적인 전략적 무지에 불과하다.
■사설은 또 남북의 정체성·고유성을 견지하자면서, 북한 상품전 등의 정서과잉을 지탄한다. 대체 민족 동질성을 넘어서는 고유성이 무엇인가. 또 민족정서보다 값진 가치는 뭔가. 브란트는 민족간 화해를 정신과적 치유에 비유했다. 감성과 정서가 결정적 요소란 얘기다. 하물며 평양 교예단 공연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짓는 이들의 응어리진 민족적 한(恨)을 달리 어떻게 풀려는가. 민족문제 해결은 비즈니스가 아니다. 독일인들은 그걸 숙명이라고 했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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