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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축구단일팀 北서 응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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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축구단일팀 北서 응할것"

입력
2000.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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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2-14일 열리는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스포츠교류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것이 분명하다. 정상회담후 9월 시드니올림픽에서 남북선수단의 동시입장, 2002년 월드컵 남북 분산개최와 단일팀 구성 등 각종 현안이 본격적 논의될 전망이다.귀순 북한체육인으로는 최고위직인 윤명찬(51)씨를 만나 북한체육의 실상과 향후 남북교류 전망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_남북정상회담 소식을 듣고 감회와 기대가 컸을텐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그렇지만, 탈북자로서 빠른 시간내에 떨어져 있는 가족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깊다. 정상회담은 국민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성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 90년대부터 구소련과 동유럽의 체제붕괴, 91년 한·중 수교가 북한에 미친 충격은 엄청났다.

특히 경제적으로 타격이 컸다. 김일성주석도 생전에 남한과 손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의 북한 경제위기가 결국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요인이다. 서로 자존심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모든 사안이 90%이상 합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_정상회담 뒤 남북체육교류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는가.

“정상회담의 우선적인 성과는 체육분야에서 나온다. 둘이 합하면 강해진다. 모든 종목의 역량이 강해져 세계적으로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특히 북한은 여자마라톤, 여자탁구, 여자축구, 레슬링, 복싱, 아이스하키 등이 한국보다 강하며 서로의 강, 약종목에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한다.

먼저 실력이 비슷한 종목에서 단일팀이 나올 것으로 보는데 내년 탁구세계선수권에서 기대가 크다. 이미 탁구는 91년 세계선수권서 단일팀으로 우승하지 않았는가.”

_가장 관심사는 2002년 월드컵축구의 분산개최와 단일팀구성 문제다.

“10월 아시안컵에 단일팀을 제안한다면 북은 당연히 응한다. 그러나 수준차가 커 문제다. 남측선수들과 수준이 엇비슷한 선수는 박경철(GK) 조인철(DF) 주성일(MF) 이창화(FW) 등 4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것도 (남에서는) 교체멤버 수준이다.

북측이 단일팀 선수구성을 양쪽 모두 동수로 하자고 한다면 남측감독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다른 종목은 몰라도 축구단일팀은 어렵다. 청소년층은 수준이 비슷하다.

분산개최도 언제든 가능하다. 평양엔 20만명 수용의 5·1경기장 등 월드컵을 치를 수 있는 경기장이 3개나 된다. 예술축전같은 큰 행사를 연 경험이 있어 호텔 등 숙박시설도 문제가 없다.”

_남북체육교류의 바람직한 방향은.

“한국선수들의 풍부한 기자재를 보고 놀랐다. 북에서는 하키 사이클 등 수입에 의존하는 종목은 기자재가 절대 부족하다. 축구의 경우 볼 하나도 생산 못한다. 탁구와 배드민턴은 훈련때 힘이 남아도는 데 공이 없어 못친다.

북한은 또 체육과학(과학적 데이타), 지도방법이 떨어진다. 스포츠는 스파르타식만으로는 안된다. 식생활도 뒤진다. 북한에서 감독이 되면 훈련보다 먹는 것과 장비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북쪽 사람들은 강하다.

북에서는 평양을 기준으로 북과 남으로 구분한다. 평양이남에서는 대표선수가 드물다. 환경과 기후 탓인지 평양이북의 사람들이 강하다. 북측에 장비, 지도방법을 지원해주고 해외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이 먼저 이뤄졌으면 한다.”

_북한의 체육실상은.

“스포츠의 인기는 높다. 특히 축구인기가 대단하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모두 체육을 시키려고 할 정도다. 북에서는 생계수단으로 체육과 예술이 가장 유리하기때문이다.

소질있으면 대표선수가 안되도 희망대로 학교와 직업을 선택할 수 있어 부모들이 선호한다. 부디 (정상회담이 잘 돼서) 북측 어린 선수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

●윤명찬…월드컵 지역예선 탈락 책임 물러나

윤씨는 1969년부터 76년까지 북한축구 대표선수로 활약했으며 평양시 중구역 클럽팀 감독과 국가체육위원회 축구과장을 거쳐 90년부터 94년까지 국가종합체육단 축구단장(청소년부터 국가대표팀까지 축구 총괄직책)을 지냈다.

93년 월드컵아시아최종 예선서 탈락한 책임으로 축구계를 떠났다가 지난해 4월 귀순했다.

글 유승근기자 usk@hk.co.kr

사진 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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