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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보는 정상회담](7) 쩡런지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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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보는 정상회담](7) 쩡런지아 교수

입력
2000.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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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성과 기대말라남북 정상회담은 남북 정상이 역사상 처음으로 만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의의를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과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남북 양측은 이번 회담에서 어느정도의 성과를 거둘 것인가. 남북 양측의 조야(朝野)나 국민들의 정서는 큰 기대감으로 들떠있다. 중국인들의 견해도 대체로 마찬가지다. 그러나 필자처럼 남과 북의 상황을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지나친 낙관을 하지 않는다.

지금 북한은 문을 열면 곧바로 해체를 면치 못하는 아주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국민경제는 수십만이 아사(餓死)할 정도로 곤경에 빠졌으며 민심도 해이돼 있다. 인민에 대한 통제가 약간만 느슨해지면 밀물처럼 국외로 탈주하거나 소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이 같은 곤경에 빠지게 된 것은 동구경제권의 해체, 연이은 자연재해 등 객관적 원인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 경제체제의 불합리성에 있다.

남북 간에 비교적 자유로운 인적 교류가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 북한은 실업자가 남한보다 훨씬 많으며 인민의 월평균 봉급은 1인당 80원 정도다. 이는 암거래 시장에서 미화 1달러밖에 바꿀 수 없는 돈이다. 그러나 남한 국민의 월평균 봉급은 미화 1,000달러가 넘는다.

즉 남북 간의 산술적 봉급 대비는 1,000대 1이다. 이 같은 상황을 알면 많은 북쪽 인민들의 마음이 남쪽으로 쏠릴 것이고 일단 남으로 간 사람은 돌아올 리 만무하다.

북한에서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공단을 꾸린다고 가정해 보자. 제3국의 자본만을 끌어들이고 싶어도 결국은 남한 자본을 유치시키는 수 밖에 없다. 남으로 가지 못한 자는 ‘남조선 자본가’의 ‘고용노동자’신세가 되며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이 최상의 소원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한다 해도 북한은 상당한 기간 구태의연한 폐쇄 정책을 쓸 것이며 큰 성과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큰 성과를 이룩할 수 있는 가는 남북한 양측의 이념, 특히 북한의 이념이 변했느냐, 변하지 않았느냐에 달려있다. 정상회담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념 변화의 요체는 냉전체제의 해체, 이데올로기 대립의 퇴색, 문호개방, 시장경제의 도입 등 4가지를 기꺼이 받아들이냐 여부이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위에서 말한 4가지 중 마지막의 두 가지에 대해서는 다소 접근해 보려 했지만 앞의 두 가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남한을 외면하고 서방국가만 상대하려 했다. 결국은 여의치 않자 정상회담을 수용한 것이다. 남한과의 관계개선 없이는, 한반도가 안정됐다는 이미지가 없이는 서방국가들과의 경제교류가 도저히 불가능하므로 마지못해 정상회담에 응한셈이다.

민족의 화합과 통일도 남북 양측의 통일 이념에 달려있지 정상회담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남쪽은 사상정리가 어느 정도 돼 있지만 북쪽은 전혀 돼 있지 않다.

북한의 통일 수단은 대체로 무력통일(1945-1953), 경제력 우세로 통일(1954-1968), 주체사상에 의한 적화통일(1969-1984), 무력통일(1985-1991), 외국자본 유치를 통한 국력강화 후 통일(1992-) 등으로 변해왔다. 통일수단이 아무리 변해도 냉전체제와 이데올로기 우선, 승남(勝南) 통일 등의 이념은 추호도 변하지 않았다.

정상회담만으로 국제사회에 한반도가 안정됐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기는 너무나 어려운 현실이다.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안내원의 감시 밑에서 활동해야 하며 북한 인민과 접촉할 수 없다. 전화도 마음대로 걸지 못한다.

사회주의 나라의 100년 사를 돌이켜보면 민주주의가 결여된 일당독재, 일인독재의 종신제이므로 국가 최고권력자가 사망해야 체제 개선의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곤 했다. 중국의 개혁도 마오쩌둥(毛澤東)의 사망이 근본적인 계기였다. 북한은 김일성(金日成)사망때 아쉽게도 이 기회를 놓쳤다. 그러므로 북한의 변화는 장기성을 띨 수 밖에 없다.

국제 관계의 측면을 볼 때 주변의 대국, 특히 미국이나 일본은 남북 정상회담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로부터 오는 저항을 극복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남한측이 그러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한 문제 해결의 첫 고리를 푸는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은 서서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인적 교류도 1년에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으로 제한하다가 체제에 충격이 생기지 않으면 문을 좀 더 열고 충격이 생기면 문을 줄이거나 닫아버리는 식으로 진행 될 것이다. 경제교류도 체제고수와 속도를 맞출 것이다.

남한에서도 북한의 이 같은 정세에 대해 정확한 파악과 인식이 있어야 하며 북한의 사정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 북한의 체제고수 이념도 어느 정도는 존중해 주어야 한다. 북한이 안정속에서 서서히 변해야 남한에도 이로울 것이다.남한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북한의 속도에 발을 맞춰 주어야 한다.

쩡런지아(鄭仁甲) 중국 칭화(淸華)대 부교수

* 약력

현재 칭화(淸華)대 부교수

중국 랴오닝(遼寧)성 우순(撫順)시 출생

베이징(北京)대 중문학 고전문헌과 졸업

중화서국(中華書局) 사전편집부 주임

1995 1990 1985년 북한 장기 방문

1995년 북한을 분석한 논문 5편 발표

1992년 ‘한국 경제 핸드북’ 편저

1987년 부터 한국 10여차례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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