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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 새둥지 튼 마라톤 기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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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 새둥지 튼 마라톤 기대주

입력
2000.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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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은 그에겐 유난히 고통스러운 한해였다. 4월 런던마라톤에서 레이스도중 쥐가 나는 바람에 2시간12분11초로 12위에 그쳤는가 하면 9월에는 육상계를 뒤흔들었던 코오롱 사퇴파동의 한가운데 서 있기도 했다. 도약을 위한 액땜이었을까.팀 이탈후 3개월간 고통스런 떠돌이 훈련의 땀방울을 닦고 나선 지난 2월 도쿄국제마라톤대회서 화려한 재기의 레이스를 펼쳤다.

한국마라톤의 얼굴 이봉주(30). 이제 그는 2일 신생 삼성전자육상단에 둥지를 틀면서 8개월여에 걸친 방황을 끝냈다. 그리고 시드니올림픽을 향해 달리고 있다.

올림픽 100일을 앞두고 서울 잠실에 훈련캠프를 차린 그를 만나 지난 일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지난 7년간 이봉주와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하고 있는 오인환코치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인터뷰] "시드니 하늘에 태극기 올리겠습니다"

_시드니올림픽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올림픽 준비는 잘 돼 갑니까.

“지난 3개월동안 훈련이 계획대로 진행이 잘 돼 지금은 휴식겸 체력회복을 위한 가벼운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보름정도의 휴식기를 가진 뒤 체력이 회복되면 다시 한달간 스피드훈련에 돌입하게 됩니다. 올림픽공원에서 주로 몸을 풀고 낮시간에는 석촌 호수공원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달 말께 시드니로 가 코스를 다시 한번 점검할 계획도 있습니다.”

역경의 시기 코오롱 사태

"할수있다" 자신감 얻어

-통상 올림픽 코스는 일반 대회보다 악조건에서 치러지는데 훈련은 어떻게 해왔습니까. 또 이번 올림픽에는 2시간5분대에 진입한 하리드 하누치(2시간5분42초·모로코), 지난해 베를린대회 우승자 조세파 키프로노와 올 2월 도쿄대회 우승자 자페트 코스게이(이상 케냐)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많이 출전하는데 라이벌로 생각하는 선수가 있습니까.

“시드니 코스는 급한 고갯길은 없지만 27개의 크고 작은 언덕이 연결되어 있는데다 올림픽기간인 9월은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계절이기때문에 체력과 지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듭니다.

이에 대비해 지난 4월부터 한달간 충남 유성과 공주사이에 있는 말티고개에서 집중훈련을 쌓았습니다.(말티고개는 3㎞ 가까이 구비구비 이어진 험난한 고갯길이다) 또한 시드니올림픽에는 정상급 마라토너들이 대거 출전하는데 상위권 15명정도는 실력이 백지한장 차이기때문에 모두가 경쟁자들 입니다.”

_코오롱사태 이후의 행보에 대해 들려주십시오.

“참으로 힘든 기간이었습니다. 경제적 문제는 물론 당시 코치선생님과 우리 선수들이 겪은 마음고생은 아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운동에 전념하기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팀을 뛰쳐나왔지만 주변의 시선을 비롯한 모든 여건들이 우리에게 불리하게만 돌아갔습니다.

때문에 선수생명이 여기서 끝날 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조차 팽배했습니다. 도쿄대회에서 성적이 좋았던 것이 무엇보다 다행스럽습니다.”

_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오인환) 당시 주위에서는 ‘배은망덕하다’는 등 일방적으로 우리를 매도하는 분위기였기때문에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가장 먼저 금전적인 어려움에 부딪혔지만 일단 우리끼리 갹출해 지방에 훈련캠프부터 차렸습니다.

나중에 체육회와 일부 독지가들의 후원이 들어오면서 사정이 조금씩 호전되었습니다만. 당시 어려웠던 것중 하나가 잦은 이동에 따른 차량 조달문제였습니다. 승용차를 이용하다가 나중에 봉주 매형이 9인승 승합차를 두달간 빌려줘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올림픽金 향해 구슬땀

4년째 사귀는 사람있어

_훈련은 잘 되었습니까. 그리고 훈련일과는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이봉주)“‘여기서 낙오하면 끝이다’라는 공감대로 뭉쳐 있었기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강도높은 훈련을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잘 참고 소화해 냈습니다.

말그대로 뼈를 깎는 훈련이었습니다. 경남 고성, 충남 보령 등 여러 군데를 다녔는데 겨울의 새벽 바닷바람이 매서웠던 보령 앞바다 길과 봉황산의 가파른 고갯길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오인환)“주로 새벽 5시반부터 8시까지 운동장을 돌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크로스컨트리 등을 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12시반까지 도로로 장거리를 달릴 때도 많았습니다. 보통 하루 40∼50㎞씩 달렸습니다.

당시 우리 행동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길은 좋은 결과밖에 없었기에 강훈이외의 대안은 없었습니다. 결국 봉주가 도쿄대회에서 한국최고기록을 내자 그제서야 우리를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_코오롱사태는 이봉주선수에게 역경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 사태의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힘든 상황을 이겨냈기때문에 이제는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남은 선수생활에 상당한 보탬이 될 것 같습니다.”

_이봉주선수도 이제 한국나이로 30을 넘어섰습니다. 체력에 부담을 느낄 때도 된 것 같은데요.

“아직까지는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봅니다. 정신력으로 버티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체력이 한계를 느낄 때까지는 마라톤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_사귀는 사람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결혼은 언제쯤 할 계획입니까.

“일단 올림픽이 눈앞에 다가온 만큼 결혼은 올림픽 이후에나 생각해 볼 참입니다. 만난 지 4년정도 됐는데 지금 지방에 있기때문에 전화데이트를 자주합니다. 힘들 때 많은 위로가 됩니다.(그러나 상대의 신상공개는 한사코 거부했다)”

_팬들은 ‘선수들이 달리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 하는데요.

“그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뛰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생각이 들면 정신집중이 안돼 레이스를 망치게 됩니다. 자신의 컨디션 점검에서부터 상대방의 심리파악, 어디서 떨어트릴(또는 따라잡을) 것인가 등에 이르기까지 한순간도 방심을 할 수 없습니다.

마라톤은 몸은 계속 달리고 머리는 쉴틈없이 굴려야 하는 게임입니다. 일례로 치고 나갔다가도 다시 처지기도 하는 일련의 동작들이 모두 의도적인 행동입니다.”

_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선수는 언젠가 ‘너무 힘들어 가끔 질주하는 자동차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이봉주선수도 그런 충동을 느낄 때가 있습니까.

“마라톤은 경기에 참가할 때보다 훈련과정이 무척 힘이 듭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목표를 상기합니다. 목표가 없다면 운동을 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_9일로 한국일보가 창간 46돌을 맞게 됩니다. 이봉주선수는 한국일보와 깊은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한국일보가 매년 11월에 주최하는 전통있는 대회인 부산-서울 대역전경주대회가 오늘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90년 36회 대회때 최우수신인상을 비롯, 93년 우수선수상, 94년 최우수선수상, 95년 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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