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 간에 빚어지고 있는 갈등은 단순한 양국문제가 아니다.유럽과 중국은 물론, 인도와 파키스탄 등 핵 무장국들의 첨예한 이해가 걸려 있고, 일본 대만 한국 등 인접국들이 이 문제의 직접적 영향권에 놓여 있다.
북한을 비롯, 이란 이라크 등 소위 ‘깡패국가(Rogue States)’들은 문제의 원인제공자들로 거론되는 다른 한편의 당사국들이다. 국제질서의 강대국들과 주도적 국가, 그리고 호전적인 군사강국들이 망라돼 있다. 관련 국가들을 이렇게 꼽는 것만으로 NMD문제의 세계적 속성은 한눈에 드러난다.
그리고 여기서 북한은 ‘주연급’이다.
엊그제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빌 클린턴과 블라디미르 푸틴 간의 미러 정상회담은 바로 이 문제를 두고 벌인 직접담판의 장이었다. 푸틴은 이 구상에 강력히 반대했고 세계는 러시아 및 유럽과, 미국간의 팽팽한 대립을 확인했다.
NMD체제에 대한 러시아와 유럽 등의 반대에는 상당한 이론적 근거가 있다. 이들은 미국의 구상이 50년대 이래 미국과 소련 양대 핵강국의 합의 하에 세계 핵질서를 규율해 온 ‘룰’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등의 장치로 수십년간 세계를 지탱해 온 ‘핵 헌법’을 일방적으로 개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간 핵균형의 기본개념은 자신의 미사일방어체제를 상호 합의된 수준으로 ‘적절히만’ 유지함으로써 상대의 공격 여지를 서로 인정하고 보장한다는 게 핵심이다.
완벽한 방위망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에 대한 ‘공포’를 안겨주고 이를 통해 선제공격을 억제토록 한다는 원리이다. 그래서 50년대 냉전시대를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에 새로 등장한 북한미사일은 말하자면 규정외 변수인 셈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NMD구상이 단지 북한의 공격가능성을 대상으로 한 자국방위 수단이라고 설득을 펴고 있는 반면 다른 진영은 핵균형의 가장 중요한 원리를 깨뜨리는, 일방의 우월한 방위체제 신설이라는 점을 중시하고 있다.
미국의 NMD계획에 따르면 2005년까지 알래스카에 기지 건설을 완료하고 1단계로 20기의 요격미사일을 실전배치한다는 것이다.
이어 이 계획은 2010년까지 모두 250기를 알래스카 외의 필요한 각 지역에 배치토록 돼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몇 기의 북한미사일만이 아니라 수십개의 다른 미사일공격을 충분히 방어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다른 국가들의 ‘의심’을 부르게 돼 있는 것이다.
격렬한 군비경쟁을 우려하는 반대론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의 맹렬한 반대 역시 이 주장을 담고 있다.
미국은 이 계획에 집요하다. 미국 당국은 북한이 2005년까지는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때까지는 반드시 NMD체제가 완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이 중시하는 대목은 북한이 이란 이라크 등에 미사일기술을 수출, 이들 간에 미사일확산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막아내려면 늦어도 내년 봄부터는 기지건설에 들어가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올 가을 중으로 모든 필요절차를 마쳐야 한다는 게 클린턴정부의 일정계산이다.
주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이 자신의 구상을 강행한다면 국제적 파국이 불가피하다. 엄청난 외교적 비용을 댓가로 그럴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타협안이 나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NMD문제를 둘러싼 세계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북한미사일이라는 새 위협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모두가 인정한다.
때문에 북한이 미사일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은 어떤 식으로든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미사일문제는 남북정상회담에서도 거론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재용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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