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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족 베낭메고 "꿈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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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족 베낭메고 "꿈을 찾아서…"

입력
2000.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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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星 서울시정개혁단장 화제서울시의 ‘잘 나가는’ 국장급 고위간부가 미련없이 자리를 내던지고 가족과 함께 1년간 세계일주 배낭여행을 떠난다. 여행경비 9,000만원은 전재산이다시피한 아파트 전세금을 빼내 마련한 돈이다. 중학생, 초등학생인 세아들도 물론 1년간 휴학이다.

서울시 이 성(李 星·44·3급)시정개혁단장은 공직자로서의 최절정기를 코 앞에 두고 최근 선뜻 무급 휴직계를 냈다. “어떻게 된 것 아니냐”는 주변의 의아해하는 시선에 답하듯 이 단장은 6일 서울시 전자사내보에 여행을 결심하게 된 배경을 띄웠다.

이 단장이 이 글에서 든 가장 중요한 여행 동기는 “점점 흑백논리로 무장돼가는 아이들에게 여유로운 마음과 열린 사고를 갖도록 해주고 싶다”는 것. “강남은 다 좋고 강북은 후지다는 생각, 메이커 (제품)는 뭐든지 좋다는 생각, 1등이 아니면 필요없다는 식의 광고….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과연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겠느냐”고 이 단장은 반문했다.

그래서 이단장은 5대양 6대주를 두루 섭렵하는 여행일정도 주로 후진국들에 비중을 두었다. 아이들에게 그 곳 사람들의 인생과 나름대로 가치있는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뭔가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다.

중학생인 홍일(15·휘문중3)·영일(14·휘문중2)군은 처음 아빠의 ‘황당한’ 계획을 듣고는 “1년이나 학교를 쉬면 뒤떨어진다”며 반대했지만, “인생에서 1년이란 아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여행을 통해 학교에서의 1년보다 더 귀한 것들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아빠의 설득을 결국 받아들였다.

여행의 또다른 이유는 ‘막내 아들’ 홍익환(10·대극초등4)군. 사실 익환이는 상처한 처남을 대신해 키우고 있는 처조카다. 이단장은 “막내가 이미 가족이긴 하지만 혹시 나중에라도 콤플렉스가 생기지 않을까 늘 걱정”이라며 “가족 모두가 혼연일체가 돼야하는 여행을 끝내고 나면 익환이는 진짜 내 막내아들이 돼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단장이 뒤로하고 떠나는 지난 19년의 공직생활은 그야말로 상한가의 연속이었다는 것이 주위의 한결같은 평가. 1980년 행정고시로 공직을 시작한 이래 서울올림픽 홍보계장, 청와대비서실 행정관, 서울시 자치행정과장 등 요직 중의 요직만 거친 끝에 올해 3월 일약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지난해에는 ‘월간 문학세계’ 9월호에 수필 ‘아버지’와 ‘돈(豚)바위산의 선물’을 응모, 신인문학상까지 받았다. 그는 이 수필에서 꼿꼿한 유학자로 가족들 먹이기보다는 굶기기를 더 자주했던 아버지(이창섭·李昌燮·75·안동 도산서원 원장)에 대한 미움과 화해, 어린시절 자주 쌀을 빌려주던 이웃집 넷째딸이 아내(홍현숙·洪賢淑·42)가 된 사연 등을 잔잔하게 그려냈다. 이 단장이 결행이 가능했던데는 바로 이 아내가 가장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11일 출발 준비에 여념이 없는 이 단장은 “남들이 내게 ‘미련곰탱이’라고 하는데 사실 미련하기 때문에 미련없이 떠날 수 있는 것”이라며 “1년 뒤 돌아와서 어떻게 할지는 도착한 날부터 걱정하기로 아내와 약속했다”고 말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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