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극단 대표, 극장 대표. 이도경(47)씨는 1인 3역이다.극단 이랑씨어터 대표였던 그는 5월 26일 극장주까지 됐다. 은행나무극장이 빚더미에 올라서면서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을 1999년말 연기자 송년회 때 알게 되자 나섰다. 사재 2,800만 원을 들여, 방수 시설이며 좌석이며 극장 안팎을 뜯어 고치고 이름까지 극단명으로 달았다. 이국적 뮤지컬을 하자는 것도, 중년의 향수를 자극하자는 것도 아니다.
첫 작품 ‘용띠 위에 개띠’는 오랜 세월 준비했던 답. 우리 이웃의 삶을 직시한다. 노총각·노총각 나용두(만화가)와 노처녀 지견숙(연예잡지사 기자)의 별난 결혼 이야기가 웃음꽃 속에 피어난다. 극작가 이만희씨와 한나절 꼬박 실제 부부를 취재한 발품이 살아 있는 연극이다.
내기하기를 밥먹기보다 즐기는 어느 별난 부부였다. 극 속의 두 주인공도 사사건건 내기하다 정이 들어 한 이불을 쓰게 된다. 그는 당연히 인정 많고 사람 좋은 나용두 역.
그의 연극은 그를 닮아 진득하다. 장기 공연의 명수. ‘불좀 꺼주세요’는 92년-95년 연속 출연한 것을 비롯, 해외·지방 공연을 합쳐 모두 1,003회 공연 기록을 수립, 배우 1인의 최다 공연 기록으로 남아 있다. 3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까지 진출, 통틀어 1,033회. 94년 SBS-TV 연말결산 연극부문 단독 수상은 그동안 나몰라라했던 대중 매체의 때늦은 대접이었다.
경주중 2학년 때 포졸 역을 맡으면서 시작한 그의 배우 경력은 서울예전 연극과, 드라마 센터 수업기 등을 거쳐 탄탄히 굳어 갔다. 간판 디자인, 포스터, 전단, 의상디자인 등까지 떡주무르듯 하는 것은 바로 오랜 무대 경험 덕이다.
아내 김희경(35)은 여고 시절부터 그의 무대를 쫓아다닌 팬이었다. 한 아가씨가 어느날 열성팬이라며 집으로 초대하더니, 그녀 부모의 닥달로 결혼하게 된 것이다. 꾸밈없는 연기, 편안한 웃음에 끌려 고교 시절부터 쫓아 다닌 처자였다. 두 사람은 ‘용띠…’의 커플을 닮아, 12년 나이차다. 아니, 연극이 그들을 닮았다.
지금 ‘연사모’ ‘갈채’ ‘하제마을’ ‘무서운 아이들’ 등 PC통신상의 연극동호회에는 그의 편안한 연기평과 함께, “너무 예쁜 소극장”이라며 이랑씨어터에 부치는 네티즌들의 글이 앞다투어 올라 와 있다. 가끔 중년 관객이 ‘용띠…’의 무대 뒤로 와, 잘 봤다며 돈을 쥐어 주기도 한다.
바로 그같은 힘으로, 장기 공연의 신화를 세워오지 않았던가. 박은주가 활달한 연기로 짝을 맞춰주는 ‘용띠…’는 화-금 오후 7시 30분, 토 4시 30분 7시 30분, 일 3시 30분 6시 30분.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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