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마르고 닳도록'‘국립극단 역사상 가장 파격적이며 가장 재미있는 연극’. 국립극단이 ‘마르고 닳도록’을 한껏 띄웠다.
애국가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내세운 이 극은 애국가를 둘러싸고 벌어졌을 법했을 가상의 사건을 극화한 것.
우화의 작가 이강백, 웃음의 연출가 이상우. 백성희 오영수 김재건 최상설 서희승 등 국립의 탄탄한 연기력까지. 세 요소가 국립의 이름 아래 결합해 한 판 환상적 다큐멘터리를 펼친다.
답은 거기 있다. 누군가 애국가의 사용료를 챙기려 든다. 그것도 잇속 바른 외국 깡패들이?
1965년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가 세상을 뜨자, 스페인 마피아들의 머리는 무섭게 돌아갔다.
그가 마요르카 오케스트라 상임 시절 애국가를 작곡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스페인 마피아는 스페인이 없었다면 애국가도 빛을 보지 못 했을 것 아니냐며 애국가 저작권을 미끼로 한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돈을 챙기려 든다는 가정에서 극은 출발한다.
이들은 한국계 스페인 입양아를 통역으로 내세워 그해 원정대를 파견한다. 박정희 대통령과 담판에선 된서리 맞고 귀국하지만, 저작권에의 꿈은 커져만 간다.
이후 30년 세월 동안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지치지 않고 돈을 챙기러 오지만, 매번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때마다 1980년 시위나 성수대교 붕괴 등 대형 사고로 번번이 희생당한 것. ‘통일 익스프레스’ 등 폭소 속에 풍자의 칼날을 번득인 연출가 이상우씨의 무대 조형술이 추상적 소품과 환상적 조명에 빛난다. 이들의 호들갑으로 무대엔 폭소가 가득하다.
한국 현대사의 중요 장면들이 교차되면서, 제3의 길로 나아가는 이 극은 일종의 대체역사극이다.
작가 이씨는 “힘든 시절을 관통해 낸 우리 자신에게 주는 위안이면서, 폭소와 함께 역사의 바른 길을 생각할 계기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쥐라기 사람들’, ‘느낌, 극락같은’ 등 그의 관념적 작품에 지루해했을지도 모를 사람들에 대한 사과의 의미도 깔려 있다.
극의 말미. 한국 현대사의 뜨거웠던 순간들을 죄 겪게 된 스페인 마피아들은 1998년 원정 때, 비로소 저작권료를 받게 된다.
그러나 저작권료로 받은 거액의 현찰을 나눠 담은 28개의 가방이 일반인들의 가방과 뒤섞이는 사태가 벌어지더니, 마침내 종적을 감춘다.
하필 IMF 환란 때 억지로 모은 국가의 재산을 국제 깡패에게 내줄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렇게, 한바탕 대체 역사는 뒤안길로 사라진다. 추상적 무대에 국립극단 배우들의 훈련된 호들갑이 볼만하다.
24-7월 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대극장). 월-금 오후 7시 30분, 토 오후 4시 7시 30분, 일 오후 4시. (02)2274-3507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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