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초 파리의 예술가들보엠(Bohemes)
단 프랑크 지음, 박철화 옮김, 이끌리오 발행
장편 예술소설 ‘보엠’을 읽기 위해서는 두가지 참고서적이 필요하다. 하나는 프랑스 파리 시내가 구석구석 잘 나타난 큼지막한 지도이다.
센강이 내려다 보이는 몽마르트르는 물론, 테아트르 광장이나 카페 ‘라팽 아질’까지 나와있는 지도면 좋겠다.
다른 하나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많이 담고 있는 화보집. 입체파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 야수파 운동의 지도자 앙리 마티스 작품은 많을 수록 좋다.
왜? 소설 속에는 20세기 초 파리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던 피카소, 마티스, 브라크, 기욤 아폴리네르, 장 콕토, 모딜리아니 등의 황홀한 예술세계가 물 끓듯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갖가지 기행(奇行)과, 가난에 찌든 모습으로. 작가 단 프랑크는 이들을 ‘고상한 말썽꾼’이라 부른다.
3부작 중 먼저 나온 제1부 ‘몽마르트르의 무정부주의자들’은 피카소가 국제박람회를 계기로 파리에 온 1900년부터, 그의 ‘곡예사 가족’이 한 경매장에서 1만 500프랑에 팔린 기념비적인 1914년 3월 2일까지를 다룬다.
무대는 몽마르트르 언덕에 세워진 바토 라부아. 이 허름한 건물에 쟁쟁한 전위예술가들이 몽땅 모인다.
피카소는 물론, 시인이자 피카소의 영원한 친구였던 막스 자코브, 시인·잡지 편집장 겸 피카소의 이론적 옹호가였던 아폴리네르, 떠오르는 야수파 화가 모리스 블라맹크. 나중에는 브라크와 마티스까지.
이들은 기행을 일삼았다. 자코브는 길거리에서 창녀에게 전도를 하려다 기둥서방에게 붙잡혀 흠씬 두들겨 맞았고, 아폴리네르는 지적 영감을 얻기 위해 과자에 오줌을 누고 방귀를 뀌기도 했다. 피카소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동거녀 페르낭드 올리비에가 다른 화가들의 모델로 나서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를 방안에 가뒀다. 그리고는 침대 위에서 밤새 아편을 피웠다.
하지만 이들은 ‘라팽 아질’이라는 카페에서 동지애를 키웠다. 이곳에서 시인은 화가를 노래했고, 화가는 시인을 그렸다.
한 때 루브르 박물관 도난사건에 연루돼 아폴리네르는 범인 은닉죄로 실형을 살았고, 피카소는 이런 아폴리네르를 모른 채 하기도 했지만 이들의 예술가적 우정은 아름답게 계속됐다.
소설 후반부는 피카소 작품세계의 변천 과정과, 이 과정에 얽히고 설킨 마티스와의 양보할 줄 모르는 경쟁이 주를 이룬다.
원시 예술에 빠져든 마티스가 1906년 앙데팡당 전(展)에 전설적인 작품 ‘삶의 기쁨’을 내걸자, 피카소는 이듬해 보란 듯이 문제작 ‘아비뇽의 처녀들’을 내놓는 식이다. 이들의 치열한 삶과 경쟁에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그럼 작가는 이처럼 파리의 지붕밑에 모인 예술가들의 기행과 작품세계만을 말했는가? 피카소의 낯익은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 생각해본다.
몽마르트르 패거리의 삶. 작가는 그 속에서 진정한 예술가는 당대의 혹독한 비판과 경멸, 손가락질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나야 함을 말한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예술은 낡은 질서 안에서는 살아날 수 없음을 웅변한 것은 아닐까?
WHO?
●단 프랑크
1952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1980년 ‘그리스의 초하루’로 등단해 프랑스 문단의 주목을 끌었고, 같은 해 선보인 ‘밤의 부인’도 호평을 받았다.
1991년 ‘이별’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로노도 상을 받았으며 이 소설은 전세계 28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이밖에 ‘아폴린’ ‘미치광이들의 묘지’ ‘베를린의 부인’ 등을 썼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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