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욕망, 그것이 이 새대의 사랑일까누군가가 물었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답했다. 함께 잠을 자고 싶은 욕망, 그것이 사랑이라고.
욕망이 두려운 것은 그 뒤에 찾아올 무시무시한 권태 때문인지도 모른다. 욕망이란 무엇인가. 세상 모든 이들이 숭배하고, 세상 모든 이들이 침을 뱉고, 세상 모든 이들이 들여다 보고 싶어하며 동시에 세상 모든 이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그 욕망이란. 성화(聖畵)에도, 고속버스 메들리 뽕짝 가사에도 그 답은 들어 있다. 도처에 널린 게 답이다. 그렇다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뭇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욕망은, 다른 말로 사랑은 몸의 행위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숫자가 늘어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이라고 포장된 욕망은 몸의 소유물임을 자연스럽게 세상이 인정하도록 허락한 것은 아닐까. 욕망은 시선 속에, 호명(呼名) 속에 있다. 느낄 수 없으면 욕망도 없다.
▥ 몸의 기억 #1
한 여자가 살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와 이혼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법원 앞에서 남자가 죽었다.
남자가 죽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죽어가는 몸뚱이’를 보게 되었다는 이유로 여자는 남자 때문에 괴로워졌다.
…수는 밤마다 가슴을 움켜 쥐고, 다른 그 어느 것도 아닌 사랑 때문에 울었다… 수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혼을 하려 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기억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했던 어떤 순간의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남편의 피투성이 상체가 보닛 위에 얹혀진 것을 목격한 이후, 수에게 남편의 모습은 그것만으로 국한되었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증오 역시 정신의 소유물이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유희. 그 유희는 더 큰 자극에 의해 상쇄되는데 몸의 충격, 한 사람의 생명이 온전히 날아가고, 그것을 지켜보는 하나의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몸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충격일 뿐이었다.
▥ 몸의 기억 #2
남자는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는 다른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남자는 운동장을 가로 질러 날렵한 몸으로 달린다. 남자는 여자의 내밀한 것을 뒤져 본 적이 있다.
그 순간에도 여자의 모습이 이렇게 강렬하게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자를 보는 여자의 시선으로 여자는 남자에게 비로소 여자가 된다.
…여자가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남자였다. 그 남자가 문방구 쪽의 담장으로 달려 올 때마다 그의 허벅지에서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근육이 컴퓨터 가게 오씨의 눈에도 바라보이는 듯 싶었다.
검게 그을린 어깻죽지와 단단한 가슴, 군살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배… 농구선수처럼 키가 훌쩍 큰, 억센 검은 머리의 남자…
‘나는 전적으로 몸이며,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영혼은 몸에 대해 어떤 것을 일컫는 말에 불과하다’ 니체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말은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했을지 모른다.
몸처럼 쉽게 변하는 것이 있을까. 남자의 단련된 근육은 언젠가 탄력을 잃고 처질 것이다. 그 몸으로 만들었던 어떠한 격렬한 사랑의 행위 역시 여자의 몸에 결코 각인될 수 없다.
몸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몸이 기억할 수 없는 것을 정신은 붙들고 늘어진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어떤 ‘물질’은 망각을 거부하려는 정신의 인위적 호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 망각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능한 것은 순간뿐 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사랑이라고 느끼는 단 한 순간. 지나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 때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지난 일 일뿐이다.
▥ 몸의 기억 #3
그러나 몸이 사랑을 기억하던 그 짧은 시간 동안 욕망은 빛난다.
…그 때 그 여자의 시선은 얼마나 빛이 나던가. 그에게 머물러 있을 때는 한번도 볼 수가 없었던, 빛나는 시선이었다. 그런 시선이라면, 여자는 그의 새로운 애인을 야구장 객석 한 가운데서도 찾아낼 수 있으리라…
남자는 여자의 시선을 바꾼 남자의 나신을 욕망했었다.
…성기를 드러내고 누워 있는 남자의 몸은 전혀 아름답지도 않고 매혹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러나 그는 그 몸을 만지고 싶었다.
그 몸에 들어있는 호흡과 그 몸에 들어있는 수성과 그 몸에 들어있는 정액을 만져보고 싶었다…
몸을 통해 욕망은 제의를 치른다. 제의는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제의 기간중 인간은 얼마나 경건했던가. 그 경건의 순간 만으로 인간은 진실하다.
문방구 여자가 달리는 남자를 욕망하는 순간, 컴퓨터 가게 남자가 문방구 여자를 욕망하는 순간, 컴퓨터 가게 남자가 변심한 옛 연인의 남자의 몸을 욕망하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의 욕망은 모든 통념에 선행한다.
남자는 이전에도 그런 시선을 본 적이 있다. 남자의 엄마는 남자가 소년이었을 때 집을 나갔다.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학교에서 돌아온 소년의 등 뒤 문밖에 머물고 있었다.
모든 어머니의 망막에 모성만이 맺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욕망에도 끝이 있기 마련. 그럼에도 욕망은 망각으로 완결된다.
그러면 인간에게 무엇이 남느냐고 질문이 던져질지도 모르겠다. 꼭 남는 것이 있어야 하느냐고 남자는, 혹은 여자는 반문할지 모른다.
그것이 이 시대의 사랑이 아니냐고. 욕망은 끝내 엇갈리고, 엇갈리다 교접하고 교차하다 다시 엇갈리는 법. 그것이 사람의 삶이 아니겠느냐고. 그것이 이 시대의 사랑이 아니겠느냐고.
박은주기자
jupe@hk.co.kr
■김인숙과의 대화
"욕망의 끝자락까지 짚는 소설 쓰고싶어"
_굳이 ‘미모 작가군’으로 분류한다면 그 중에 속하는 당신이다. 진짜 작가는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모더니즘적 작가관이 아직도 지배적이다.
“예쁘다고 말해주니 고맙다. 그러나 작가라서 외모에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어거지다.”
_남자들은 여자들이 꾸미는 것이 그들에게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행복할 땐 거울 속에서 보는 내가 좀 다르게 보일 때, 활기차 보일 때다. 아무리 사람들이 예쁘다 해도, 자신이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미없는 얘기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자가 꾸민다면 그것은 누구도 아닌 여자 스스로를 위해서이다.”
_여자들 소설의 배경이 없다고들 한다. 당신 소설을 ‘기행’하려면 사실 머리속을 기행하는 수밖에 없다. 왜 거대한 서사구조가 없는가.
“여성 작가 소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 때였다. 그 때도 나는 작가였다.
버스를 타고 강릉에 갔다. 바닷가에 앉아 있었더니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뒤통수만 보고 남자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느 곳도 여자들이 자유롭게 여행하기엔 안전하지 않다. 같은 이유로 세상은 여자들이 떠돌도록 만들지도 않는다. 침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 스스로 작은 이야기가 좋다. 큰 이야기를 하는 작가는 나말고도 많다.”
_몸에 대한 언급이 독특하다. 왜 몸인가.
“시인 황인숙의 시에 ‘기분 좋은 말’이 있다. 달리다, 맨발, 고무줄 뛰기 같은 말이 나온다. 그 시가 좋다. 다시 태어난다면 맨발로 춤추는 여자가 되고 싶다.
몸은 정직하다. 망각도 정직의 한 몫이다. 권태로운 삶보다는 자극적인 삶이 좋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작가이기 때문인지도.”
_그럼에도 당신의 언급은 치열하지 않다. 당신을 포함한 대부분 여성 작가들의 소설이 몸에 대해, 성적 욕망을 표현하는 데 몸을 사리는 것 같다.
“그렇잖아도 그런 소설을 한번 써보고 싶다. 욕망의 끝자락까지 짚어보는 그런 소설.”
김인숙은 일찍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학 1학년 때 신춘문예에 응모한 ‘상실의 계절’이 당선됐다. 대학생 남녀가 육체적 사랑을 통해 사랑이 뭔지 알아가게 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선되는 것이 뭔지는 알았으나 작가가 되는 게 뭔지는 진짜 몰랐다.” 겨우 스무 살에 ‘선생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작가가 되는 일은 열등감과 마주하는 것이었다. 훌륭한 작가들이 정말 많았다. 스무 살, 명문대 여대생, 적나라한 섹스 표현. 여성지(誌)적 관심에 더없이 알맞는 그녀의 등단 소설은 그녀에겐 두고두고 짐이 됐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폄하했다. 하나는 부담스러웠고, 다른 하나는 억울했다.
“제대로 된 소설을 보이고 싶다.” ‘79-8겨울에서 봄 사이’ ‘핏줄’ 같은 소설들로 그렇게 몇 년을 지냈다. 그것도 지나고 보니 제 옷은 아닌가 싶었다. 이제와선 둘을 화해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성 작가에 대한 호기심 어린 관심, 마케팅, 그리고 성공과 폄하. 그런 문단의 틀 속에서 산 지 어느 덧 17년이다.
●김인숙(金仁淑)
1963년 서울 출생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1983년 대학 1년 때 조선일보 신춘문예 ‘상실의 계절’ 당선
중편 ‘먼 길’로 28회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1995년)
단편 ‘개교기념일’로 45회 현대문학상 수상(2000년)
소설집 ‘함게 걷는 길’ ‘칼날과 사랑’ ‘유리구두’
장편 ‘핏줄’ ‘먼 길’ ‘그늘, 깊은 곳’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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