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중의원 해산과 함께 일본 여야는 25일 실시될 총선을 앞두고 본격 선거전에 돌입했다. 이번 총선은 21세기 일본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쟁점이 부각되지 않고 있다. 선거결과 역시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선거를 전후한 향후 정국 전망이 극히 불투명하다. 이번 선거의 주요 관심사를 짚어 본다. 편집자주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는 7월 오키나와(沖繩) 주요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 이후로 총선을 치를 구상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때쯤이면 경기도 뚜렷이 살아 날 것이고 G8 정상회담의 여세를 몰아 밀어부치면 어렵지 않게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돌연한 그의 타계는 자민당의 이런 구상을 통째로 흔들었다. 당초에만 해도 불투명한 절차에 의해 탄생한 ‘임시 정권’으로 G8 정상회담을 맞기가 부담스럽다는 여론으로 상황은 자민당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특히 오부치 전 총리에 대한 동정표가 잡힐 듯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자민당은 ‘6월 2일 중의원 해산, 6월 25일 선거’ 일정에 따라 승리의 보증 수표라는 ‘조기(弔旗) 선거’를 치를 작정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15일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의 나라’라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의 돌출 발언은 상황을 급전시키고 말았다. 파문이 일자 자민당에 비상이 걸렸다. 취임 당시 ‘오부치 계승’을 표방, 40% 이상을 확보했던 내각 지지율이 급전 직하했다. 발언후 1주일만에 지지율은 20% 이하로 떨어졌고 2일 산케이(産經)신문 조사에서는 ‘지지한다’가 14.6%인 반면 ‘지지하지 않는다’가 81.2%나 됐다.
언론이 연일 모리총리의 자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그는 3일 과거 일제 시절 ‘천황 중심의 국가 운영 체제’라는 특수한 의미를 지녔던 ‘국체(國體)’라는 말을 또 내뱉았다. ‘국가의 체제’라는 뜻일 뿐 과거의 의미로 쓰지 않았다는 해명을 했지만 여론반전엔 씨도 먹히지 않고 있다. 지금 자민당 내부에서는 장탄식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경제문제도 시원하게 풀리지 않고 있다. 1만9,000엔대의 상향 안정세를 보였던 닛케이(日經)평균주가는 한때 1만6,000엔선의 붕괴마저 점쳐질 정도로 폭락했다가 5일에야 겨우 1만7,000엔대를 회복했다. 미국 주가의 불안과 닛케이 평균주가 산출 종목의 변경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일본 경제의 미래에 대한 투자가들의 불안을 반영하고 있다는 게 대부분의 평가들이다. 총선 직전에 발표될 1999년도(3월말 종료) 국내총생산(GDP) 실질성장률이 당초 전망대로 0.6%를 넘을 수 있을 지도 미지수이다.
‘오부치 동정표’를 뚜렷이 잠식하고 있는 이런 불안요인앞에 자민당의 자신감은 크게 위축됐다. 해산 직전 자민·공명·보수당을 합친 중의원 의석이 총의석의 67%, 336석이었던 연립여당은 전체 의석이 20석 줄어 480석이 되는 이번 총선에서 전체 의석중 56%, 269석의 ‘절대 안정 다수’ 확보는 무난할 전망이었다. 하지만 현재 목표를 하향조정해 연립여당 전체로 ‘안정 다수’ 254석, 자민당 단독으로 229석만 넘으면 된다해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자민당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대는 것은 8일 오부치 전총리의 장례식이 고작이다. 이를 계기로 분위기 반전이 이루어 지기만을 바라는게 주요 ‘선거전략’일 정도이다.
모리 이후 겨냥한 세력확대 경쟁 치열
자민·공명·보수당 등 연립여당이 야당의 공세를 가볍게 따돌리기는 어려우리라는 전망은 자민당내 파벌간 세력 다툼을 자극하고 있다.
파벌의 이해에 따라 ‘승패선’이 다르지만 연립여당이 위원장의 캐스팅보트를 포함해 모든 상임위에서 과반수를 차지하는 ‘안정 다수’ 254석을 밑돌면 모리 체제 지속에는 당장 의문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또 끊이지 않는 말썽으로 보아 위원장을 빼고도 모든 상임위에서 과반수를 이루는 ‘절대 안정 다수’ 269석을 확보하더라도 모리체제의 장기 지속은 어려울 전망이다.
모리 총리의 퇴진이 시간 문제라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모리 이후’를 겨냥한 자민당내 각 파벌의 세력확대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최대파벌인 구 오부치파는 후견인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의 은퇴와 오부치전 총리의 타계로 구심력이 떨어졌지만 주도권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 간사장의 집권 발판을 다지려는 가토파와 모리체제 지속을 겨냥하는 모리파의 제2 파벌 다툼이 눈길을 끌고 있다. 비공식적으로 지원하는 후보까지 포함하면 양파는 각각 60명 이상의 후보를 낼 예정이다. 가토파는 참의원이 17명으로 모리파보다 4명 적어 최소한 이번 선거에서 4명 이상을 더 확보해야만 한다.
또 해산전 27석이던 야마사키파의 중의원 의석이 해산전 27석에서 얼마나 주는 지는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전 정조회장의 ‘차기 후보’ 탈락 여부를 좌우하게 된다.
/도쿄
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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