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9월21일. 내가 근무하는 한양대병원 분만실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3개월동안 준비했던 수중분만이 이뤄지려는 참이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처음 시도하는 수중분만이었다. 그동안 관련 논문을 거의 모두 찾아보고 준비해왔건만 긴장감을 떨칠 수는 없었다.산모는 뮤지컬 배우인 최정원씨였는데 분만은 참으로 멋진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분만실 내부는 아름다운 풍선들로 가득 채워졌다. 남편도 욕조에 들어가 진통시간 내내 함께 했다. 산모가 좋아하는 음악인 ‘오페라의 유령’을 들려주었고 친정 엄마도 딸의 손을 잡고 격려했다. 결국 산모는 진통이 훨씬 적었을 뿐 아니라 진통시간도 다른 산모의 반 밖에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앉은 자세로 편히 아기를 낳았다. 아기는 건강했으며 공식적으로 물 속에서 태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아기가 됐다.
이 과정이 올초 방송을 통해 소개된 뒤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사람들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뒤 이뤄진 수중분만은, 내가 파악한 것만도 500여건에 이른다.
그러나 수중분만을 시도한 뒤 나는 의학계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의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별 것을 다 했다”는 말로부터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다양한 반응을 접했다.
내가 수중분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영국 옥스퍼드대에 연구원으로 가있던 1992년부터다. 나는 그곳에서 수중분만을 통해 산모들이 편히 출산할 수 있고 그래서 수중분만이 성행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나는 곧 수중분만을 아주 부드럽고 자연스런 분만 환경을 유도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게 됐다.
얼마전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는 수중분만의 실시여부를 의사의 판단에 맡긴다는 공식 의견을 내놓았다. 외국서 발표된 논문 결과를 참고하자는 의견과 함께 임산부들에게는 장점과 단점을 확실히 알린 후 실시하자는 쪽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공식기관으로서 참으로 객관적인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한마디 더 붙인다면 의사들에게는 산모에 대한 사랑과 용기가 필요하리라.
분만이란 ‘의료’보다는 ‘문화’로 이해돼야 한다. 여성의 출산이 ‘문화’로 이해될 때 산모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다. 산모가 환자 취급을 받지 않으며, 자신이 능동적으로 분만 환경을 주도해 나간 수중분만.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됐다.
/박문일 한양대 산부인과 교수
입력시간 2000/06/0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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