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북한 지도자 김정일] (6) 대외인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북한 지도자 김정일] (6) 대외인식

입력
2000.06.05 00:00
0 0

김일성(金日成) 주석 생존시에 북한의 대외관계는 김주석이 전담했기 때문에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저작이나 연설 가운데 대외관계를 다룬 것은 거의 없다.김정일의 대외관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는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발표된 일련의 논문이나 신년사다. 기본적으로 김정일의 정치적 위치는 북한체제와 일체화해 있기 때문에 개인의 대외인식과 북한의 공식적 입장 사이에 차이가 드러날 수는 없다.

김정일의 대외 인식은 전형적인 제국주의론에 입각, ‘제국주의의 침략적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데 기초하고 있다. 이 제국주의의 중심은 당연히 미국이겠지만 1994년 제네바 핵합의 이후 미국을 직접 지칭하지는 않고 있다.

김정일은 95년과 96년의 신년사에서 북·미간에 ‘새로운 평화보장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특히 97년에는 통일 문제가 ‘민족적인 문제’인 동시에 ‘국제 문제’라고 말한 뒤 미국에 대해 같은 요구를 되풀이했다. 나아가 대일관계에 대해서도 언급, 북한에 대한 적대 정책을 버릴 것을 주장했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다.

북·일 수교에 따른 막대한 보상금은 김정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97년은 북한으로서는 미국과 일본에 대해 가장 유화적인 인식을 보인 시점이다. 이는 4자회담에 대한 수락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98년도부터 북한의 미국에 대한 관계 개선 요구는 자취를 감춘다. 이해 신년사에는 “적들의 유화 전략에는 혁명적 원칙으로, 무력침공에는 혁명전쟁으로 대답할 것”이며 ‘미제 호전광’에는 “섬멸적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강경 어조가 등장했다.

97년에는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세계화 흐름을 강력히 경계, 비난하는 논문을 직접 김정일 이름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서 비판의 대상이 된 세계화는 제국주의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김정일은 한·일 군사협력이 실현되면 미·일·한의 삼각관계가 북한을 압살하려는 포위망이 될 것이라는 강한 경계심을 품고 있다.

그러나 98년 이후 신년사에는 미국이나 일본을 직접 지칭하며 비난하는 어조가 보이지 않는다. 북·미, 북·일관계에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김정일의 대외관에서 미국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중국이다. 김정일은 80년대 중반에 집필한 논문에서 중국의 개방정책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인식은 90년대에도 변함없이 유지되었으며 북한은 이른바 ‘개혁·개방’이란 용어 자체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국은 94년 제네바 핵합의 이후 김정일이 미국에 너무 기울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의 대북 식량 지원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특히 중국은 김정일이 너무 친서방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어 중국 지도부와의 공감대를 찾기가 어렵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중국과 북한의 불편한 관계는 1999년 10월의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베이징(北京) 방문으로 회복됐다.

이는 김정일의 방중 및 장쩌민(江澤民) 주석과의 회담으로 이어졌다. 김정일은 江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이 실정에 맞는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해 특색있는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서 커다란 성과를 달성한 데 대해 축하한다”고 말했다.

실로 획기적인 중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며 북한의 향후 진로를 시사하는 중대한 발언이다.

김정일은 러시아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구사회주의권 일반이 겪고 있는 혼란을 대표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북한은 한때 러시아 공산당이 대통령선거에서 승리, 사회주의가 부활하기를 바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북한과 우호관계를 회복하는 정책으로 선회했고 한·소 수교 이래의 불편한 관계가 많이 해소됐다.

공식적인 언술에서 나타나는 대외관이 어떻든 김정일은 서방을 포함한 외부와의 관계 개선을 꾀해 나가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권이 이미 붕괴했고 시장경제만이 남아있는 세계에서 이에 적응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식량난 이후 국제사회에 대한 식량지원 요청 등에서 북한의 현실적 자세가 잘 드러나고 있다. 북한은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전방위 외교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북한의 공식 언술과 실제 행동은 큰 괴리아래 이중성을 갖기도 하지만 중요 부분에서는 이미 많은 접근을 하고 있다.

서동만(徐東晩·외교안보연구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