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가 피흐트 전독일 훔볼트대 한국어문학 교원교수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인 2000년 4월에 베이징(北京)에서 남북 정상회담 합의가 발표됐을 때 더없는 기쁨을 느꼈지만 의심도 강했다.
왜냐하면 1972년에 그리고 특히 1992년에도 남북간 화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으나 그후에 실망감도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실무접촉과 준비 협상이 순조롭게 진전되는 것을 보고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서울에서, 그리고 백남순(白南淳) 북한 외무상 등 북한의 책임자들이 쿠바의 하바나 등에서 정상회담을 환영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나는 정상회담의 기초가 1972년 7월4일 발표된 7·4 공동성명 원칙과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은 주로 외세, 즉 세계 열강들 간의 냉전으로 말미암아 생겼기 때문에 양측이 공동으로 자주적 입장을 강조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48년 전부터 한국학(Koreanology)을 전공했다. 한국문화와 한국의 고대와 현재를 점차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해 가는 과정에서 한국 민족을 동정하고 사랑하게 됐다.
나의 한국학 공부는 원래부터 한국전쟁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었으며 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다른 전공을 택했을지도 모른다.그래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 발표를 접한 소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독일 통일과정을 현장에서 체험한 동독 출신 학자인 나는 먼저 이번 정상회담이 하나의 출발점밖에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남북한 국민들과 세계 여론은 너무나 많은 것을 한꺼번에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수십년 전부터 누적돼온 불신의 태산을 이른 시일 내에 헐어버리지 못한다는 현실을 직시했으면 좋겠다.
나는 1990년부터 한국 기자들이 통일문제에 대한 견해를 물을 때마다 민족 분단을 극복해 진짜 통일을 이룩하려면 서두르지 말라고 충고해왔다. 독일이 한 것처럼 흡수통일을 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이는 어쩌면 유일한 충고였다.
남북 양측은 그 어떤 것도 답습하지 말고 민족의 역사와 분단 과정의 특징을 독립적 입장에서 분석한 뒤 이에 알맞은 독특한 화해 및 통일의 길을 찾아야 한다.
남한은 40년 전부터 자본주의시장 경제를 효율적으로 건설해 왔으며 최근에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수립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그 결과 여러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고 부자와 강자가 됐다. 반면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택한 북한은 성공하지 못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세계적인 범위에서 실패했다. 북한은 빈자이며 약자가 됐다. 그렇지만 북한 주민들은 1953년부터 수십년간 허리띠를 졸라매고 헌신과 적극성을 발휘, 주로 미군의 폭격으로 가혹하게 파괴된 나라를 공업국가로 복구한 것도 사실이다.
오늘까지도 동독 출신들은 서독측 승리자의 우월감과 교만성 때문에 차별을 당하면서 인간적 존엄을 유린당하는 경우가 있다.
동독 출신 학자인 나는 남한 정치인 경제인 문화인과 모든 사람에게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업(독일말로:Lebensleistung)을 업신여기지 말고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북한주민들과 접촉할 때 동등권을 준수하라는 부탁이다.
독일통일은 강자가 약자를 흡수하는 방법으로 실현됐다. 그 결과 많은 동독 사람은 물론 서독 일부에서도 통독이 참다운 통일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통일된 지 10년이 됐지만 동·서독 민중은 서로 가까워지지 않고 더욱 더 멀어지는 경우마저 생기고 있다. 독일 전체의 부와 축적된 독특한 경험을 동등하게 이용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동독에서는 공업적 기초가 없어졌고 서독 기업들만 재미를 보는 경우가 많다.
서독기업이 동독을 시장으로만 여기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서독기업의 이윤은 배가 되었으나 건설분야는 물론 심지어는 수공업 분야에 이르기까지 서독기업이 호경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통일 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동독실업자수가 2000년까지도 줄지 않았다는 통계가 지난 5월 광범위하게 보도되었다.
정상회담에 임하는 남북 양측의 수뇌부와 실무자들은 10년 간의 통독경험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이 교훈을 한반도의 특성에 맞게 적용하면 미래의 단계적 통일을 위한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베를린선언에서 강조한 것처럼 경제협력 화해 및 이산가족 상봉과 정부간 대화를 정상화하는데 우선 주력할 것 같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수십년 간의 대결상태가 가시고 1953년 정전협정 조인장인 판문점으로부터 긴장완화가 시작돼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남북 양측이 군비를 축소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남북한 민중의 복리뿐 아니라 이웃 나라의 이익에도 부합 할 것이다.
나아가 동아시아와 세계평화의 유지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임은 물론이다.
* 약력
1934년 독일 슈에시(동독) 출생
1959년 베를린 훔볼트대 한국 및 일본어문학과 졸업
1964-92년 훔볼트대 한국어문학 교원 교수, 1996년까지 초빙교수
1990년 훔볼트대 한국연구소 창립
1990-2000년 국제고려학회 부회장
한국문학·한국철학사 및 20세기 역사에 대한 수십건의 논문을 한국어 독일어 영어로 발표, 1994년부터 한국문학작품(박완서 최인훈 박경리작 등)을 독일어로 번역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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