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사기혐의로 불구속재판을 받던 전직 국회의원이 대법원의 실형선고 하루전 미국으로 달아났다. 또 수천억원대 금융사기혐의로 징역 15년형을 받은 사기범이 구치소 관계자 등을 매수해 구속에서 풀려난 뒤 중국과 국내를 드나들며 사기행각을 되풀이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일반에게는 경직되기 이를데 없는 우리 형사사법제도 아래서 할리우드 영화속 같은 절묘한 탈주·도피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것이 충격적이다.두 사건을 두고 일부에서는 불구속피고인 관리와 구속집행정지 제도의 허점 등을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는 두 사건 모두 제도의 허점을 비집고 나온 우연한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형사사법절차 곳곳에 도사린 낡고 썩은 관행이 두 사건을 낳은 근본이다. 사법제도 안팎의 뿌리깊은 비리구조가 ‘사법제도의 실패’를 초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검사출신에 국회의원을 지낸 박병일 변호사의 해외도피는 검찰과 법원이 그를 일반 형사범과 달리 ‘예우’한 것 때문에 가능했다. 검찰은 당초 사기혐의가 뚜렷한 박씨를 불기소처분했다가 뒤늦게 피해자의 재항고를 받아들였으나 불구속기소했다. 또 하급심 법원은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서도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16대 총선에 자민련후보로 출마까지 했던 박씨는 대법원의 유죄확정 판결을 미리 알고 서둘러 출국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출국금지조치도 없었으니, 가만히 앉아서 형집행을 기다렸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검찰과 법원의 이런저런 변명은 귀기울일 구석이 없다.
금융사기범 변인호씨의 구속집행정지·병원탈주·중국도피 등으로 이어진 행각은 사법제도를 둘러싼 비리구조가 제도자체를 농락한 사건이다. 변호사·구치소관계자·검찰수사관·법조브로커 등이 얽힌 비리구조는 할리우드 마피아영화에 결코 못지 않다. 그가 국내에 다시 드나들며 사기범행을 되풀이한 대목에 이르면, 형사사법기구의 총체적 실패를 보는 듯하다. 관련자 몇몇을 잡아넣은 것을 자랑할 게 아니라, 검찰과 법원 모두 엎드려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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