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과 몽구·몽헌회장 등 3부자 동시 퇴진은 우리 재벌사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임이 틀림없다. “현대답다”는 말이 여러 곳에서 동시에 나올 정도다. 정명예회장은 ‘사퇴의 변’에서 “이제 세계사적인 흐름과 여건은 각 기업들이 독자적인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하는 것만이 국제 경쟁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최대 재벌 총수로 ‘왕(王)회장’이라고 불리던 그가 그같은 발언을 할 줄이야, 라는 반응이 나온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그런데 현대 사건에 대해 국민들은 궁금한 것이 많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라고 한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현대라는 그룹을 아직도 한 개인의 소유물로 여기고 있다는 인상을 짙게 받기 때문이다. 몽구와 몽헌 형제측이 ‘음모설’ ‘역음모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나, 어느 쪽이 정명예회장의 진심을 제대로 읽고 있나 하는 것이 사태의 본질인 것처럼 논의되는 분위기가 대표적이다. 정명예회장이 언급한 ‘세계사적인 흐름’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한국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일본 경제단체연합회(經團連)의 이마이 다카시회장은 최근 내년 5월까지 우리의 경영자총협회와 비슷한 일본경영자단체연맹(日經連)과의 통합을 마무리짓겠다며 차기회장까지 지명했다. 이마이회장은 통합의 불가피성을 “정부부처 개편이나 국회의원 정원 삭감, 기업 합병 등 시대적인 흐름에서 경제단체만 벗어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집단의 원조격인 일본에서도 재벌이 해체되는 등 ‘시대적 흐름’은 도도하다.
■‘왕자의 난’ ‘황제경영’ ‘가신들’ 등등 현대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도 문제다. 마치 현대그룹이 정씨 일가의 세습‘왕조’라도 되는 듯이, 그런 단어들이 동원되고 있다. 겉으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전문경영인 시대’등을 외치면서도 우리 국민들 깊숙한 의식에는 아직 전근대적인 사고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상호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