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은 의료계의 반발이나 의·약계의 분란이 아니더라도 넘어야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그만큼 총론의 좋은 취지를 흐릴 수 있는 각론상의 허점은 너무도 많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주최로 지난 4월 대전에서 열린 의약분업 관련 세미나 자리에서 미국에서 의원을 운영했던 내과 전문의 정희국(鄭熙國) 박사는 “의약분업 후에는 환자가 의약품명을 알게 돼 특정 약을 처방전에 써달라고 요구할 것이 분명해 상당수 의사가 실질적인 처방결정권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약분업이 오히려 의사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의료계에서는 또 “의약분업 시행후 약사들이 처방전없이 전문의약품을 멋대로 판매할 것”이라며 약사의 임의조제 문제를 여전히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약사회는 “적발되면 면허가 취소되는데 돈 몇 푼 때문에 임의조제를 하는 약사가 어느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의료개혁시민연합 이덕승(李德承) 사무총장은 특히 “행정적 감시에 비용이 많이 든다면 국민에게 감시기능을 맡겨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의료보험 재정 안정화는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 최대과제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 의약분업이 뿌리를 내린 것은 포괄적 의료보장제도와 탄탄한 보험재정 덕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작년말 현재 지역 및 직장의보 재정적자가 9,000억원이 넘을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 여기에 의약분업 초기에 의사와 약사의 수익보전을 위해 수가인상, 처방료 및 조제료의 현실화가 불가피해 의료보험료 인상이 뒤따를 전망이다. 의약분업 시행이 당분간은 국민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특정 의료기관과 특정 약국이 담합해 1대1로 분업을 실시하는 ‘선(先)분업’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曺在國) 보건연구실장은 “선분업은 처방자(의사)가 약물 사용에 이해관계가 없도록 함으로써 적정 약물 사용을 유도한다는 의약분업 본래 취지에 어긋난다”며 “적발시 엄격한 처벌과 소비자 감시 등 다각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익(金容益)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의약분업이 순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규의 제정도 중요하지만 의약품 처방 및 조제 과정에서 이윤 동기 및 집단간 이해관계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규제하고 감시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의약분업 시행 일지
·1965,69년= 국회 보건사회위원회 권유로 의약분업 시도했으나 무산
·84.5=전남 목포에서 의약분업 시범사업 실시
·94.1=의약분업 실시 시기 명문화 위한 약사법 개정
·97.12=총리실 자문기구 의료개혁위원회, 의약분업 실시방안 검토
·98.5=소비자, 언론, 의·약계 대표로 의약분업추진협의회 구성
·98.8=의약분업 시행방안 합의(99년 7월1일 시행)
·98.11=의약분업 시행시기 연기 결정
·99.3=의약분업 시행시기 1년 연기한 약사법 개정 공포
·2000.7.1=의약분업 시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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