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죽음의 언저리에서 바라본 따뜻한 삶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죽음의 언저리에서 바라본 따뜻한 삶

입력
2000.06.05 00:00
0 0

이윤림 첫 시집 '생일'‘맛없는 인생을 차려놓은 식탁에/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이윤림(42) 시인의 첫 시집 ‘생일’(문학동네 발행)의 표제작이자 이 시집의 서시는 그의 현실을 암시하는 것같다. 그는 지금 암 투병중이다.

배에 복수(服水)가 차오르는 것을 보면서 시인은 그러나 ‘복수’라는 말의 다른 울림을 떠올린다.

‘그래, 뱃속에 가득 찬 건 복수다/ 모르지 않아/ 그래도 복수를 가득 담은 그릇이 되고 싶지 않아/…/ 내용물은 어쩌지 못하더라도/ 이름이라도 마음대로 바꿔보렴/ 그래, 이렇게 고쳐 부르겠다/ _ 배에 용서가 가득 차니/ 보기 좋았더라’(‘배에 용서가 가득 차니’ 부분)

죽음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도 복수 대신 용서를 생각하는 시인의 자세는 차라리 편안해 보인다. ‘그랑 블루’라는 시도 그렇다.

‘나를 저 밑으로 보내줘/ 가서 봐야겠어/ _ 거기는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물 속이야/ 거기서 돌아온 자는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거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_ 거기로 돌아간다고 해야겠지’(‘그랑 블루’ 부분)

이씨는 이 시집의 서문에서는 그러나 “인간은 죽음을 앞에 두고도 초월이라는 것이 어렵기만 한 것 같다. 삶의 또 다른 이름 _욕망, 욕망하는 인간_ 어리석고 가엾고 또한 사랑스럽지 않은가?”라고 묻고 있다.

“유고시집이 아닌 시집을 한 권 내고자 한 나의 소망”이라는 표현은 안타깝기만 하다.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고 교직에 있던 이씨는 올해 ‘작가’ 봄호로 등단했다.

평소 써두었던 시들을 아까워한 문단 지인들의 권유 때문이었고 이번 시집도 그런 연유로 묶여져나왔다.

최승호 시인은 “육신의 덧없음을 깊이 느끼고 소멸 이후의 자리에서 삶을 바라보는 눈을 갖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그의 시들을 말했다.

그 말처럼 이씨의 시들은 스스로를 모두 비워낸 뒤의 부재(不在)를 자신의 존재로 받아들인 자만이 발설할 수 있는 언어로 읽힌다.

하종오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