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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재원 VS 황춘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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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재원 VS 황춘덕

입력
200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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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만 잡아주면 아이들은 제힘으로 흘러가지요"●도재원(都在元)- 거창고 교장

1942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했다. 거창고 출신으로 연세대 화학공학과와 고려대 대학원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1971년 은사인 고 전영창(全永昌)교장의 권유로 거창고에서 교편을 잡은 뒤 거창고 교감, 거창고 재단의 샛별중 교장을 거쳐 1990년 거창고 교장이 됐다.

1996년부터 2년간 당시 문용린(文龍鱗)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교육개혁위원으로 활동했다.

●황춘덕(黃春德)- 성지고 교장

1947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했다. 1970년 원광여고 졸업과 함께 출가해 원광대 원불교학과와 경남대 교육대학원에서 수학한 뒤 1985년까지 원불교 대구 대명교당과 경남 창녕의 남지교당 등에서 교무(기독교의 목사격)로 봉직했다.

1986년부터 교단이 운영하는 전남 영광의 해룡고에서 12년간 국민윤리를 가르쳤으며 1998년 같은 계열인 영산성지고 교장으로 부임했다.

거창고와 영산성지고는 이른바 ‘대안교육’의 성공 케이스로 꼽힌다. 두 학교는 입시위주의 일반 학교와는 달리 나름의 전인교육을 실현하면서 각기 교육목표를 훌륭히 달성하고 있다.

과연 이같은 방식이 요즘 우리 사회의 중심 화두인 과외 방지와 공교육 내실화를 위한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지, 거제고 도재원 교장과 영산성지고 황춘덕 교장에게 들어보았다.

"이름 한번 불러줘도 힘나는게 학생

교사라 헌신하면 아이들은 따라와"

-두분 교장선생님들이 하시는 대안교육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 도재원 = 한마디로 자율 교육입니다. 보충수업을 포함한 모든 학내 활동을 학생들의 뜻에 맞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학교에선 학생들이 실내화를 제대로 신지 않고 식판이 없어지는 것이 오랜 문제였는데 학생회에 해결을 맡겼더니 학생들이 거기서 정해진 규칙을 거짓말처럼 잘 지켜 금새 개선됐습니다.

학생들은 자기가 선택해서 하는 일은 확실하게 합니다. 보충수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는 수업시간만 정해줄 뿐 참여여부는 학생이 정합니다.

그 효과가 대학입시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지난해 졸업생 198명중 서울대, 연고대 등 일류대 50명을 포함, 181명이 4년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거창고가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합격률이 높다는 소문이 있는 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스파르타식은 1-2개월은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더이상은 안됩니다.

자율을 통한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이 어우러져야 학습효과도 배가되는 것입니다.

● 황춘덕 =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성지고는 알려진대로 다른 학교에서 2번이상 쫓겨난 문제아중의 문제아들이 모인 학교입니다.

그래서 부모들도 아이들을 처음 학교에 데려올 때는 완전 포기상태 입니다. 학교는 아이들의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와 불만을 풀어주는 데 주력합니다.

공부를 강요하는 일은 아이들의 학습능력도 떨어지거니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스스로 풀어보라고 권합니다. 우리 학교에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교사와 학생이 모이는 전체회의가 있습니다.

여기서 교사와 학생이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을 해서 해결방안을 찾습니다. 언젠가는 학생들 사이에 빈번한 폭력 때문에 학부형들까지 불러 이틀 밤낮으로 회의를 계속했습니다.

그랬더니 폭력이 싹 사라졌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과정을 거친 아이들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학습의욕을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막 살아왔던 지난 삶을 반성하면서 인생의 목표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 지난해의 경우 26명 졸업생 모두가 전문대 이상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 도재원 = 결국 과외문제도 학교안에서 풀어야 합니다. 법적 규제로는 과외를 결코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입시가 계층상승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는 우리 사회구조 아래서는 아무리 강력한 제재수단을 동원한다 해도 자식을 조금이라도 낫게 살도록 하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학교에는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없습니다. 혹자는 거창이 지방도시여서 일류 과외선생이나 학원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학생 스스로가 별도의 수업을 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학교에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자신합니다.

● 황춘덕 = 물론 학교 교육의 내실화가 과외를 원천적으로 없앨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정부와 교사, 학부모가 과외방지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최우선 과제임은 분명합니다.

고액과외 기준 설정이니 하는 대증 요법에 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답답합니다.

-그렇다면 학교 교육 내실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 도재원 = 외람된 얘기지만 우리학교나 성지고처럼 하면 됩니다. 우선 학교가 공부만 죽어라고 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삶의 현장이라는 인식을 갖고 접근하는 것입니다.

삶이 그렇듯이 학습에도 50분 수업을 하고 10분을 쉬는 것처럼 완급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학교엔 학생 스스로 결성해 허가를 받은 23개 서클이 있고, 계절별로 캠핑과 축제가 활발히 진행됩니다. 그리고 첫눈이 오는 날에는 수업을 중단하고 인근 산으로 교사와 학생이 토끼몰이를 나갑니다.

이같은 다채로운 이벤트와 학생 자율이 공부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도 오히려 학습의 능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다음은 교사들의 사랑입니다. 학생은 선생님이 좋으면 해당 과목을 열심히하게 마련입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의 이름을 전부 외워 꼭 이름을 부릅니다. 저는 교장이지만 직접 수업(수학)을 합니다. 교사 수가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학생들을 자주 접촉해야 학생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황춘덕 = 교사의 힘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교사가 자신으로 인해 한 아이의 장래가 바뀔 수 있다는 사명감을 갖고 임하면 학교 교육이 한층 풍성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업방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10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지도안을 갖고 가르치는 교사들의 행태가 사라져야 하고, 학생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수업과 지적 능력과 적성에 맞는 차등 수업방식이 개발돼야 교실붕괴도 막고 과외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재단과 교장이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합니다. 교사들은 의미를 추구하는 집단입니다. 교사들에게 재단이나 교장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뚜렷한 교육 명분을 제시한다면 금전적 보상이 적더라도 교사들은 열성을 다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성지고가 이 만큼 알려지고, 궤도를 이탈했던 학생들이 제자리를 찾고 있는 것도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며 학생을 위해 헌신하는 교사들 덕분입니다.

"첫눈오면 수업대신 토끼몰이

소문난 진학률도 자율이 바탕"

-그런 교육방식이 다른 학교에서 일반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황춘덕 = 성지고 학부모들의 경우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하든 전적으로 학교에 맡기고 기다려 줍니다.

그러나 대학 입시가 지상 목표인 일반 학교에서 성지고나 거창고와 같은 수업을 했다면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무슨 교육실험 대상이냐”며 당장 들고 있어났을 겁니다.

이런 풍토에서 대안교육이나 진정한 공교육 내실화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는 아직 어려운 것 같습니다.

● 도재원 = 그렇습니다. 우리 학교는 1953년 설립이후 학교와 학부모들 사이에 오랫동안 쌓여온 신뢰가 있기에 특성화한 교육이 가능한 것입니다.

학부모들은 거창고가 어떤 학교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자녀에게 입학시험을 치르게 하기 때문에 교육 방식에 대한 이의제기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다른 학부모들은 자녀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배정받은 학교에서 일반 학교와 다른 교육을 하면 불안할 것입니다. 교장이 아무리 훌륭한 소신과 철학을 갖고 있어도 이를 밀고 나갈 만한 여건이 안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척박한 토양에서 처음 씨를 뿌려야 할 사람은 역시 교장입니다.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총대를 매는 교장이 자꾸 나오면 사회 분위기도 서서히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교육 강화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없습니까.

● 도재원 = 국가예산을 학교에 듬뿍, 한번에 쏟아부어야 합니다. 학교 컴퓨터 보급대수를 늘리는 식의 조삼모사(朝三暮四)식으로는 안됩니다.

학생수가 많은 학교를 둘로 쪼개는 한이 있더라도 학교규모를 줄이고, 학교시설과 수업장비를 첨단화하는 등 하드웨어를 획기적으로 개량해야 합니다.

또 교육부의 권한을 일선 학교로 점진적으로 이관해 학교와 교사가 자율적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지금 교사들은 상부의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단순 노동자처럼 돼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교사의 사명감만 강조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고액과외의 주요 원인인 서울대를 없앨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정부가 개혁안을 마련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 희망입니다.

● 황춘덕 = 정부가 교육정책을 입안할 때는 교사들의 의견을 꼭 들어주었으면 합니다.

지금의 정책은 그 정책의 실행자인 교사들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한참 걸릴 만큼 현장과 동떨어져 있고 이해할 만 하면 또 바뀝니다.

학교가 작아져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담임교사가 이름 한번 불러주어도 힘이 나는 게 학생인데 하물며 교장이 학생을 일일이 알아준다면 어떻겠습니까.

학교 규모는 교장의 시야에 모든 학생이 들어올 수 있는 정도가 돼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사제간에 정이 생기고 학생이 가고싶은 학교, 공부하고 싶은 학교가 되는 것입니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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