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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보는 정상회담](4) 로버트 매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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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보는 정상회담](4) 로버트 매닝

입력
200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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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과 같은 웅장한 대사를 놓고 의심스런 암시를 하는 것 조차가 어쩌면 서구적 오만함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회담이 과연 한반도 긴장완화의 신기원을 여는 새 지평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까.혹은 단순히 북한을 생존토록 하는 모호한 정책들을 위한 또다른 장(場)에 들어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가장 궁금한 것은 김정일의 예상치 못한 정상회담 합의 이면에 어떤 의도가 깔려 있느냐는 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베를린 선언을 통해 북한에 대해 세 가지 중요한 약속을 했다. 즉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과 경제 원조, 국제사회에서의 적극적인 지원등이 그것이다. 김대통령은 대신 북한이 무력도발과 핵무기 및 장거리미사일 개발 야망을 포기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이같은 거래가 이뤄지는 혹독한 시련의 장이 될 것이다. 지지자들 입장에서 보면 정상회담은 지난 7년 동안 미국 중심으로 진행돼온 한반도 외교정책의 주도권을 남북 양측 당사자에게 돌려주는 극적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김대중대통령이 줄기차게 추진해 온 ‘햇볕정책’을 정당화해 주는 것 이기도 하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정상회담의 성사가 4·13 총선을 의식한 측면이 있고 위험한 양보라고 보고 있다.

솔직히 말해 정상회담은 유례 없이 놀랄 만한 일이긴 하지만 북한의 논리는 여전히 의문투성이로 남아있다. 북한은 지난 10년 동안 오로지 미국에 초점을 맞추면서 남한을 의도적으로 무시해왔다.

하지만 북한이 이처럼 변화를 보인 이유는 몇 가지를 용인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즉 김정일로서는 김대통령이 커다란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햇볕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데다, 총선이라는 정치적기회를 맞닥뜨린 상황에서 김대중정부를 도와주려 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북한의 회담 수용은 또한 북한이 최근 몇달간의 평화공세에서 보여준 커다란 전략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평양은 최근 호주와 필리핀, 이탈리아, 일본 등과 폭넓은 외교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페리보고서가 남북 정상회담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남북정상회담은 페리구상의 대안 내지 거부를 반영하고 있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을 지닌다.

북한의 새 외교정책이 미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얻었다는 평양의 깨달음을 반영한 것이라는 시각은 자못 흥미롭다.

페리 구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6개월간의 북한 고위급 당국자의 미국방문 논의도 중단됐다. 페리구상이 북한으로 하여금 미사일개발등 군사적 시위 자제와 같은 양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타협하거나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미국과의 관계를 진전시키기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경제지원을 찾기로 결정했을 수 있다.

북한의 이러한 행보는 미국에 보다 보수적인 공화당 정부가 들어섰을 경우에 대비한 대미 정책의 지렛대를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걱정은 북한측 행동의 어두운 면이다. 북한은 최근 극심한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10년 이래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더욱이 북한이 새 장거리 미사일 개발 노력을 포기하려는 흔적은 전혀 없다. 북한은 파키스탄과 연대하고 있으며 리비아나 이라크와도 핵무기와 미사일 등의 분야에서 협력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북한의 외교공세들을 여전히 모호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들이다.

북한은 자칫 이번 회담을 통해 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에서처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위험성이 있다. 북한은 극도로 제한된 관광을 허용하는 것만으로 매년 1억5,000만달러를 받고 있다. 남한 이외에 세계의 어느 나라가 이 같이 큰돈을 북한에 쏟아붓겠는가.

김대통령은 베를린 선언에서 고속도로와 항구 철도 전기 통신시설 등 사회간접자본(SOC)의 합작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은 지금 북한의 연착륙을 유도하고 있다.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보다 경제지원을 통한 평화공존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서 김대통령의 핵심 원칙중 하나는 상호주의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당사자인 김대통령과 김정일 모두에게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남한은 정상회담에서 실수를 할 여유가 거의 없다. 구 소련에 대한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의 견해를 빌리자면, 북한을 상대하는 가장 안전한 길은 불신임과 확인이다.

정상회담은 북한의 정치적 계획에 일대 변화가 왔음을 의미한다. 정상회담은 은둔자인 김정일에게 새로운 공적 역할을 부여하며 김대통령에게는 역사적인 업적이 된다.

그러나 발전소와 도로 철도 통신시설에 대한 지원등은 모두 남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만큼 이 모든 것들은 긴장 완화와 미사일·핵문제등과 연계돼야 한다. 또한 대화에 의한 군사력 감축이 뒤따라야하며 남북한 경제위원회뿐 아니라 공동군사위원회도 함께 열려야 한다.

로버트 매닝 미 외교협회 아시아담당 선임연구원

* 약력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기자(1979-1985)

유에스 앤 월드 리포트 기자(1985-1987)

미 국방부장관 자문관(1988-1989)

미 국무성 정책자문관(1989-1993)

조지 워싱턴대 개스턴 시거 센터 연구원(1993-1995)

진보 정책 연구소 수석연구원(1994-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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