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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15대 심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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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15대 심수관

입력
200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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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 시대 말기, 규슈 남단 가고시마(鹿兒島)의 한 중학교에서 신입생 하나가 선배학생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신입생 명단에서 조선인 이름을 발견한 학생들이 교실로 몰려가 “조선인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자 한 학생을 불러낸 것이다. 매맞은 소년은 뒷날 사쓰마 야키(薩摩燒)의 전통을 재건한 14대 심수관(沈壽官)이었다. 억울하게 맞은 것이 분해 울고 돌아간 소년을 마을 어귀에서 맞이해 준 사람은 아버지였다.■중학교 갈 때 같은 일을 당했던 아버지는 아들이 울고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는 가마 앞에 앉아 아들의 어깨를 껴안고 가계의 내력을 들려주었다. 340여년 전 우리 조상은 훌륭한 나라인 조선에서 왔으며, 사쓰마 야키의 뿌리는 조선이라고. 자신이 일본인이란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던 소년은, 그 일을 계기로 자신의 몸에 순수한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인식을 굳히게 된다.

■소년은 다음날부터 악바리 싸움꾼이 된다. 유도와 검도를 수련해 적수가 없어지게 되고부터는 조선에서 유학온 학생들의 싸움을 가로맡고 나섰다. 같은 피를 가진 학생이 당하는 것을 모른 체 할 수 없다는 의협심이었다. 그는 ‘두개의 심장’을 가졌다고 말한다. 하나는 조상의 나라인 한국을 그리고 사랑하는 심장이고, 하나는 일본을 사랑하는 심장이라는 것이다. 명예 한국총영사이기도 한 그는 지난 연말 외아들(40)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은퇴했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지난 연말 선대의 이름을 물려받은 15대 심수관이 며칠 전 명지대 초빙교수가 되었다. 아버지와 같은 와세다대학 출신인 그는 이탈리아에 유학해 현대도자기를 배웠고, 한국에서 1년동안 옹기 굽는 기술을 익혔다. 흙의 본질과 가장 가까운 한국의 옹기가 도자기의 원형이라고 여긴 것이다. 5월 29,30일 명지대 산업대학원에서 첫 특강을 가진 그는 “한국은 나의 조국이고, 일본은 모국”이라고 말한다. 한국이름을 대대로 물려가는 심수관가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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