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위기 타개책으로 내놓은 정주영 명예회장 등 3부자의 동시 퇴진결정이 하루만에 금이 가고 있다. 현대자동차측은 어제 이사회를 열어 몽구회장의 대표이사 회장직 유지를 결의함으로써 그룹의 결정에 대한 ‘반란’ 양상을 보였다.이유여하를 가릴 것 없이, 이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기만행위로 규탄받을 일이다. 창업오너인 아버지가 결정하고 두 아들이 뜻을 보탠 형식으로 대내외에 천명한 공약을 하루가 가기도 전에 그들중 하나가 파기하는 작태는 국민을 허수아비로 보는 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정명예회장 부자에게 엄중하게 촉구한다. 혈연간의 분란을 조속히 해결지어 당초의 결정사항을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재확인하기를 바란다. 특히 몽구회장측은 설혹 퇴진 결정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뤄진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룹의 명실상부한 정통 ‘권위’가 내린 용단이고 국민 대다수가 환영한 일인 만큼 그대로 따르는 것이 순리라는 사실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물론 몽구회장측이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데는 논리적 개연성이 없지 않다고 본다. 현대자동차에 대한 일정한 권리와 동생 몽헌회장측과의 상대적 불공평을 주장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의 지적대로 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현대자동차에서 야기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계제도, 경영권을 고집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다. 현대의 계열기업들 전체가 한묶음으로 위기를 맞이한 절박한 국면인 것이다. 그룹의 위기가 전근대적인 지배구조와 형제간 쟁투로 인한 시장의 불신에서 왔음을 뒤늦게 각성하고서야 취한 결정인데, 이마저 금이 갈 경우 현대자동차도 예외없이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더욱이 현대그룹의 난맥으로 인해 국가경제가 위태로운 지경에 몰리게 된 책임을 손톱만큼이라도 인정한다면 스스로 백의종군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마땅한 자세다. 몽구회장이 그래도 정히 경영권에 애착이 간다면 먼저 현대자동차의 계열분리작업을 완전하게 마친 후에 정식 절차를 거쳐서 주주들의 신임을 받는 것이 올바른 수순일 것이다.
또다시 혼미해진 현대 사태에 채권단과 정부는 적극 대처해야 한다. 어렵게 마련된 수습방안에 약간이라도 구멍이 생긴다면 이번 결정 전체가 백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재벌개혁에 악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도 이번 결정이 한치의 차질없이 이행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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