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14번째이자 재임중 마지막인 지난달 31일의 미국-유럽연합(EU) 정상회담은 예상대로 대서양 양안간 갈등의 골을 재확인하고 별 성과없이 끝났다.위성감청망 ‘에셜론’에 대한 유럽내 불만과 양안간 무역갈등을 해소해 보겠다는 게 클린턴의 복안이었지만, 초강대국 미국의 독주를 우려한 유럽측이 무역 안보 정보통신 등 회담 핵심 의제에서 시종 강경한 자세를 견지, 뜻을 이루지 못했다.
회담에서는 유럽항공기 컨소시움인 에어버스 보조금 문제, 쇠고기 환경호르몬 파동, 바나나 수입쿼터, 유전자 조작식품(GMF), 외국 서비스회사들에 대한 미국의 세금보조, 미국산 항공기 엔진 소음기에 대한 유럽의 금수조치 등 양안간 무역현안과 에셜론 감청,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등이 폭넓게 논의됐다. 클린턴이 이날 전격 제의한 ‘미사일 방어기술 공유안’은 이같은 유럽내 반미정서를 감안한 ‘당근’의 성격이었지만, 클린턴이 직접 언급한 것처럼 ‘깡패국가’에 기술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문명국’간에 어떻게 기술을 공유할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에 실효성을 의심받았다. 유럽쪽에서는 어정쩡한 기술공유안을 앞세워 미국측이 NMD 개발의 불가피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의 일환이 아니냐는 강성 발언까지 터져나왔다. 이와관련, 파스칼 라미 EU 무역대표는 이날 샬린 바셰프스키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회담 뒤 “양측간 주요 통상현안 논의에서 진전이 없었다”고 회담장의 어두운 분위기를 그대로 밝혔다.
이번 정상회담 의제와 별개로 유럽의회는 에셜론에 대한 의회 차원의 조사 수준과 범위 등을 놓고 8일 표결에 들어간다는 입장이어서 특히 감청사건을 둘러싼 미-유럽간 파장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독립된 유럽독자방위군 창설과 같은 유럽의 ‘탈 미국화’ 현상은 냉전 종식후 가속화하는 미국의 세계지배를 저지해야 한다는 유럽의 조바심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편 양측은 이날 회담후 인터넷을 통한 데이터 전송 보호 생명공학 분야 협력 개발도상국 질병 퇴치 등에서 공동 노력한다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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