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여고괴담’에 이어 박기형 감독의 두번째 영화이다. 다분히 일본 ‘학교괴담’을 본 뜬 데뷔작의 성공이 오히려 그의 행보를 어렵게 했다. ‘비밀’은 ‘여괴괴담’의 속편을 포기하고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것이다. ‘초현실 감성영화’를 표방했다. ‘초현실’이란 불가사이한 소재나 영적(靈的)인 코드를 사용했다는 것이고, ‘감성’이란 날카롭고 직설적인 현실비판 보다는 멜로적인 분위기를 가졌다는 얘기다. 결국은 ‘여고괴담’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여고생들을 위한 영화인 셈이다.말과 기억을 잃어버린 소녀 미조(윤미조)가 생명보험사 보상담당 구호(김승우)의 진실한 사랑을 만나면서 서로가 갖게 되는 초능력들(텔레파시, 원격투시, 염력)은 인간이 가진 순수한 에너지이다. 감독 스스로 “잃어버린 에너지를 회복하는 길을 찾는다”고 했다. 유일한 길은 사랑이란 주장이다. 때문에 그 사랑이 현실적 한계와 과거 기억으로 흔들릴 때 초능력은 파괴적인 형태로 변하면서 현대인들의 진정한 소통부재와 그 이유들을 비판한다.
슬픔을 통해 그것을 호소력있게 전달하기 위해 여주인공의 존재는 절대적. 소녀는 맑고 슬프면서도 신비로운, 그러면서 엄청난 비밀(상처)이 숨어있어야 한다. 영화는 그래서 신인을 기용했고, 그런 장치들을 집어 넣었다. 그러나 CF적 연출만으로 긴 시간 소녀의 어색함을 막기는 역부족이었고, 일반적이면 동시에 상투적일 수 있는 과거설정(소녀 아버지의 성적 파탄, 어머니의 종교적 광신주의)이 영화의 전체를 흔들어 버렸다. 3일 개봉.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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