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해외에서 보는 정상회담](3) 와다 하루키 교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해외에서 보는 정상회담](3) 와다 하루키 교수

입력
2000.06.02 00:00
0 0

남북 정상회담 개최 소식은 커다란 놀라움이었다. 나는 북한이 스스로의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일정한 국제적 긴장을 필요로 한다고 보기 때문에 북한이 한·미·일 3국과 일거에 관계를 개선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의 현명하고도 현실적인 ‘포용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한국과의 사이에 당분간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교류는 민간차원에 한정할 것이라고 보았다.

또 남한으로서는 인내심을 갖고 북한과 미일 양국과의 관계개선이 선행하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김대통령은 미일 양국의 대북관계개선이 남한보다 앞서도 괜찮다고 명확히 표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과의 교섭에 이어 일본도 마침내 올 3월 대북 국교정상화 교섭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마침 그때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발표됐다. 이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는 진전이었다. 김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포용정책’의 커다란 성과로 실로 축하해 마지않을 일이다.

남북 정상의 대면은 그 자체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김정일 총비서는 정규 국가원수인 주석직을 폐지하고 군의 최고지도자인 국방위원장으로서 국가 최고지도자를 겸하는 독특한 구조를 만든 뒤 스스로 ‘정규군 국가’에 깊숙이 틀어박혔다.

그런 사람이 국가를 대표해 남한 대통령과 회담한다는 것은 국제무대에의 첫 등장이자 탈신비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일단 신비의 문을 열어 젖히면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도 차례로 회담할 수 있고 외국을 방문할 수도 있다.

김정일에게 김대통령과의 만남은 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김영삼 전대통령과 만나려 했던 것과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김주석은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많이 회담했고 여러 차례 외국을 방문했다. 김정일이 북한 지도자로서의 첫 회담 상대로 중국이 아니라 같은 민족인 남한 대통령을 고른 것은 현명한 결단이자 민족에게 무게를 싣는 원칙의 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돌이켜 보면 김정일은 정상회담쪽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한달 전인 3월6일 평양의 중국대사관을 방문, 미리 중국측에 인사를 했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 움직임은 신중하게 준비된 행동이라고 말해도 좋다. 이같은 연유로 정상회담은 그 자체로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회담 내용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기대처럼 남북 경제협력이 곧바로 이뤄지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김정일이 아무리 경제원조를 바란다 하더라도 첫 만남에서 경제협력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북한의 경제적 곤란과 사회 혼란 상황을 감안할 때 상당히 어렵지만 인도적 문제로서 어느 정도 발을 내딛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결단에 달린 문제인 만큼 국민의 열망을 담은 김대통령의 제안을 수용, 규모야 어떻든 꼭 시작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김정일은 김대통령에게 북한의 통일방안, 즉 김일성주석의 통일방안을 제안할 것이란 점이다.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연방제 통일이라는 원칙을 주장할 것임에 틀림없다. 외국 군대가 주둔하는 사태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끼리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자는 식으로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할 것이다. 한미 양국간, 남한 내부에 문제를 들이밀려는 노림수다. 물론 미국을 화나게 하는 어법은 피하려 할 것이다.

이에 대해 김대통령이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가 흥미롭다. 미국과의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주적인 입장에서 훌륭한 대응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김정일은 김대통령과 만나 누가 한민족의 지도자로서 당당할 수 있는지를 다투려 할지도 모른다.

이같은 시각이 맞다면 경제문제는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보상금을 받아 타개한다는 기존 노선의 관철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이번 정상회담을 활용한다는 것이 북한의 노림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일이 아니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전면에 나서 남한측과 경제협력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방향으로 간다면 김정일은 기존 노선을 수정한 것이 된다. 이는 물론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정상회담의 분위기가 남북 접근 방향으로 진전된다면 다음번에는 퍼스트 레이디를 동반한 두 정상의 만남을 희망하고 싶다. 이같은 탈신비화가 북한의 국익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일본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 명예교수

약력

1938년 오사카(大阪) 출생

1960년 도쿄(東京)대학 서양사학과 졸업

1968-97년 도쿄대학 사회과학연구소 교수(러시아 혁명사·한국현대사), 98년부터 동연구소 명예교수

강단에 머물지 않고 ‘베트남전 반대’ ‘김대중 구명’ ‘한일 연대’ 등의 주민 운동을 이끈 활동가로서도 유명

‘니콜라이 러셀-국경을 넘은 나로드니키’ ‘막스·엥겔스와 혁명러시아’ ‘페레스트로이카’ ‘분단시대의 민족문화’ ‘일한 연대의 사상과 행동’ 등 저서 다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