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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보도자료용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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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보도자료용 개혁

입력
200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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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 원의 뇌물을 받아 축재해온 사람이 국무총리로 버젓이 근무하면서 개혁을 외치고 있었는가 하면, 미아리 텍사스촌에서는 경찰관들이 정기적으로 상납을 받아왔다고 한다. 참신성과 개혁성을 무기로 정치에 입문한 젊은이들이 광주 5·18 전야제가 끝난 다음에는 룸살롱에서 접대부들과 술판을 벌였고, 바로 그 날 그 술집에는 교육계 지도자들도 모였었다고 한다. 또 시민단체를 이끄는 저명한 인물은 성추행 혐의로 구속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기초(fundamental)가 튼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멀쩡한 담벼락이 무너져 11살짜리 아이가 죽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또다시 벌어졌다. 기초가 튼튼한데 어찌 담벼락이 느닷없이 무너지느냐 말이다. 학교급식이 시작된 이래 이질환자는 매년 증가일로에 있다. 급식이 없던 시절에는 이질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위생을 고려하지 않는 일부 학교의 급식 때문에 집단이질환자는 금년에도 수천 명으로 늘어났다. 교육계의 부패가 이것뿐이 아니건만 교육당국은 대책없이 그저 손놓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할 때 이번만은 제대로 개혁해 주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개혁이 이런 저런 이유로 흐지부지 되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으니 개혁에 대한 피로감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까지 역대 정권들이 해왔던 것처럼, ‘그러면 그렇지 개혁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라고 체념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정말 우리에겐 희망이 없는 걸까? 어째서 이렇게 되어 가는 걸까?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의 인식의 틀을 깨는 기초를 개혁하지 않고 겉모양만 번지르르하게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태의연한 인식체계는 그대로 둔 채, 겉치레만 하고 있으니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행정개혁과 관련하여 관료들이 발표한 것을 보면, 실질적인 내용은 하나도 바꾸지 않은 채 보도자료용 개혁안만을 내놓고 있다. 공무원들의 성과급 지급, 목표관리제 시행, 다면평가를 통한 인사고과 등 수많은 조치를 발표했지만, 전문적인 입장에서 속을 들여다보면 한 마디로 웃기는 얘기다. 달라지는 것은 없고 개혁구호만 난무하는 꼴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첫째, 개혁의 대상자들이 개혁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안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기초(fundamental)를 개혁하다가는 기득권을 잃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기득권이 손상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조치만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종합적인 개혁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기본틀을 개혁해 가는데는 정치, 교육, 행정, 경제, 사법 등의 하위영역들이 유기적으로 동시에 개혁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상호 통합·조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개혁프로그램을 알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위험스럽게도 각각의 영역에서 중구난방으로 개혁안을 내놓고 있다.

여기서 지도자가 알아야 할 것은 관료조직은 스스로 개혁되는 법이 절대로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약간의 부작용과 심한 반발이 있더라도 관료들의 구시대적 발상과 기득권을 뒤흔드는 기초개혁에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도자는 종합적인 개혁프로그램을 설계하여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것만이 개혁의 피로감을 극복하는 길이다.

/최동석 조직개혁전문가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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